천선란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은 동물과 로봇, 그리고 인간이라는 종을 넘어선 아름답고 찬란한 회복의 연대를 담고 있는 SF소설이다. 우리는 현대사회를 사람, 사물 등 모든 것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초연결사회라고 부른다. 하지만 과연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현 사회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믿음, 연대는 커지고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행복하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해당 소설에서는 나날이 진보하는 기술 속에 희미해지는 존재, 발달된 기술이 배제한 이들의 연대를 통해 부서지고 다친 마음을 회복하며 함께 나아감의 의미를 전해준다.

◇ 너의 행복함이 나에게 울림으로, 진동으로, 떨림으로 전해진다

《천 개의 파랑》은 가까운 어느 미래의 휴머노이드(인간의 형태나 특징을 지니면서 인간이 아닌 실체)‘콜리’와 경주마 ‘투데이’를 주인공으로, 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주제가 ‘회복의 연대’인 것처럼 소설에서는 ▲미래 앞에서 방황하는 ‘연재’ ▲소아마비로 인한 장애를 가진 채 살아가는 소녀 ‘은재’ ▲동반자를 잃고 멈춰버린 ‘보경’ 등 여러 아픔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2035년 휴머노이드 로봇이 우리 삶에 깊게 들어온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콜리는,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실수로 1.000개의 단어를 학습할 수 있는 학습용 휴머노이드 칩이 삽입된 로봇 기수이다. 자신의 파트너인 경주마 투데이가 관절이 닳아 더는 달리기 힘든 것을 알고 콜리는 스스로 낙마를 결심한다. 낙마로 인해 부서진 콜리는 폐기 처분되어야 했으나 콜리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 여학생 연재에 의해, 연재의 집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콜리는 연재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연재의 언니 은혜, 이 둘의 엄마 보경 등 여러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지게 된다. 이들은 관절이 닳아 안락사 위기에 처한 경주마 ‘투데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고 결국 마지막 경주의 기회를 얻게 된다. 콜리와 투데이는 천천히 달리는 것을 연습하고 경기에 나가게 되는데 다시 한번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투데이의 마음을 느낀 콜리는 투데이를 위해 낡아 무거워진 자신의 몸을 떨구며 또다시 낙마하게 된다.

◇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 서로를 돌아보는 따뜻한 ‘파랑(波浪)’

‘파랑’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파란빛이나 물감을 뜻하는 파랑과 작은 물결과 큰 물결을 뜻하는 파랑(波浪).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2가지의 의미 중 물결을 의미하는 파랑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히고 어울리면 그에 따른 차갑고 따뜻한 물결이 마음에서 일어난다. 책에서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 묻는 콜리에게 보경은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라고 답한다. 보경은 소방관이 떠났다는 사실보다 앞으로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의 무게감으로 자신의 슬픔을 돌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매일매일 여러 정보가 쏟아지고 빠르게 변하는 ‘가속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시간의 가성비를 따지는 ‘시성비’를 중요하게 여기고 조금 느리거나 다르면 비효율적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혼자선 살아갈 수 없다. 느리고 도태되었다는 생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연대와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우리의 마음에는 모두 ‘연대’와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빨리’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주변을 돌아볼 수 없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천천히 가더라도 끝까지 목표를 이룬다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가끔 자신이 도태되었다고 생각할 때 자신을 믿고 천천히 나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바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모두가 느릴 용기를 가지길 바라며 다음의 문장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