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네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뭐야?”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낭만’이라고 답할 것이다. 나에게 낭만은 길 가다가 올려다본 유난히 높고 푸른 하늘을 느긋이 감상하는 것, 1분 1초가 아까운 시험 기간에 잠시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 지친 현실을 내려놓고 즉흥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 등 나를 둘러싼 모든 일상이었다. 이렇게 난 항상 마음에 낭만을 품고 살아갔다. 그러나 낭만이 가득한 마음으로 바라본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낭만을 논하는 나는 이 현실의 이방인이 되어있었고 괴짜, 이상주의자로 변해있었다. 나의 낭만은 이 현실에서 ‘사치’였고 ‘무의미한 것’이었다.
학창 시절, 우리에게 가장 큰 꿈은 ‘대학’이었다. 내가 왜 대학을 가야 하는지, 대학에 가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고민할 시간도 없이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 우리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 대학 시절, 우리에게 가장 큰 꿈은 ‘취업’일 것이다. 취직을 하기 위해 스펙을 쌓고 이력서를 채워 넣으며 4년을 버티면 또다시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난다. 인생은 마치 ▲내 집 마련 ▲결혼 ▲육아 ▲승진 등 수많은 퀘스트를 하나씩 해결하며 결국 끝에 다다르게 되는 게임과 같이 흘러간다. 얼마 전 친구가 나에게 ‘아무리 퀘스트를 해결해도 계속 다른 퀘스트들이 떠올라 인생이 너무 막막하다’라고 얘기했다. 이것은 비단 내 친구의 고민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 이 세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청춘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낭만을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나의 꿈을 찾는 일에 열중하기보다 사회가 정해준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급급한 현실을 살아간다. 아주 조금이라도 정해진 틀을 벗어나면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혀 인생을 실패한 것만 같은 현실을 살아간다. ‘네가 꿈을 꾸는 동안 남들은 꿈을 이룬다’와 같은 명언에 뒤덮여 스스로를 벼랑 끝까지 내몰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살아간다.
최근 십몇 년 만에 대학교에서 밴드 열풍이 불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음악 차트 상위권에도 밴드 음악이 다수 보이는데, 사람들은 이를 보며 ‘밴드 붐’이 일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밴드에 열광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낭만’이다. 낭만이란,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꿈과 감정에 충실한 태도’를 뜻한다. 낭만의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라는 부분인 것 같다. 사람들이 낭만을 찾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나도 숨 막히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낭만을 찾았다. 그렇게 찾은 나의 낭만은 바로 ‘돈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퀘스트는 인생을 ‘잘 살기’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들이고, 여기서 ‘잘 산다’라는 것의 의미에는 대부분 경제적인 여유로움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의 필요에서 한 걸음 물러나면 나의 삶에는 낭만이 깃든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꿈을 찾을 수 있다. 삶에 지칠 때면 주저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가끔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일어나면 되지’하는 말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견뎌낼 수 있다. 소박하지만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주도적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 낭만은 현실의 도피처이자 꿈의 목적지이다.
낭만 있는 삶을 살고 싶었고, 낭만 있는 꿈을 좇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겪은 낭만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교사라는 직업을 택했다. 아이들을 짓누르는 너무나 무거운 현실 속에서 숨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네가 겪는 현실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 낭만을 누려보라고, 그 속에서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열심히 살려고 하는 건 좋은데 우리 못나게 살진 맙시다. 사람이 뭐 때문에 사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열심히 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가끔은 내가 왜 열심히 살고 있는지, 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쉬어가자는 것이다.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말자는 것이다.
많은 청춘들이 본인에게 드리운 현실의 무거움에 답답함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쓰럽고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에게 비추는 빛을 가로막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자신을 가리는 현실의 어둠을 거둬내고 환한 빛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들에게 낭만을 외친다. 가끔은 쉬어가도 된다고, 가끔은 실패해도 된다고. 오늘도 힘겨운 하루를 살아가며 지친 당신에게 이 글을 바친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낭만이라는 배에 몸을 맡기고 당신의 청춘을 누리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