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우리 집 이사였다. 고1이 되며 고등학교 근처로 이사를 갔던 터라, 내가 대학생이 된 지금 다시 고등학교 이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이사를 준비하며 힘들었던 것은 청소와 같은 육체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중·고등학교 생활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오는 것이 핵심이었다. ‘세상 사람들 모두 각자 자신만의 고민과 후회가 있겠지’라는 내 생각은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은 어떤 후회를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커졌다. 그러다 초등학생 때 ‘자신의 미래 계획하기’ 시간에 했던 연령대별 이루고 싶은 꿈 적기 활동이 번뜩 떠올랐고, 나아가 연령대별 고민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령대별 고민에 대해 찾아보다 김효근 이화여대 교수가 명명한 '지식지수(KQ) 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목표와 실천 전략을 세운 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정신자세, 습관 등을 나이별로 정의해 놓은 것을 의미한다. '지식지수(KQ) 나이'를 알게 된 후, 연령대별로 가지는 고민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호기심을 느낀 나는 ‘인생의 고민과 후회’라는 주제를 여동생 진로 상담으로 한창 바쁘던 가족 저녁 식사 자리에서 꺼내며, 나와 엄마의 삶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먼저 10대(TEEN모형)에는 잠재된 재능을 키우기 위해 폭넓게 지식을 탐색하고 여러 친구를 사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되어 있다. 나의 10대는 충분히 행복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 그 행복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시기였다. 학생의 의무는 공부라고 생각하며 공부를 제외한 인간관계, 자존감 등을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중학생 때는 그저 성적이 잘 나오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살아왔고, 공부도 내적 동기가 아닌 누군가가 칭찬해 주는 외적 동기로써 하루하루를 버텨갔다. 이런 마음으로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이런 나는 성적까지 나오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이 없겠구나’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된 후, 10대의 나를 떠올려보면 ‘너 참 행복했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에도 내 옆에는 무슨 일이 생겨도 너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해준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부가 전부인 줄 알아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나와 다른 여러 친구를 만나보려 하지 않았던 10대에 아쉬움이 남는다.
20대(TWENTY모형)에는 10대에 발견한 재능에 맞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엄마는 나를 26살에 낳고 다시 대학 공부를 했다. 2남 1녀 집안의 막둥이로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미술 쪽에 흥미를 느껴 미대를 진학했다. 4년 동안 미대생으로서 부지런한 삶을 살던 엄마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던 외할아버지의 퇴임으로 인해 졸업과 동시에 아빠와 결혼했다. 그렇게 26살에 나를 낳은 엄마는 동네의 미술 선생님으로 계셨는데, 늘 늦은 시간까지 학생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느라 나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평생 이런 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한 엄마는 외할머니의 권유로 식품영양학 공부를 시작했다. 예체능 공부만 했던 엄마는 태어나 처음으로 인생을 건 공부를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험 기간에는 나를 재우고 부엌 식탁에서 밤새 공부를 했으며, 대학 수업을 듣기 위해 매일 새벽 5시 버스를 타고 나갔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렇게 누구보다 절실히 공부했던 엄마는 과 수석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녔다. 이 외에도 당시에 식약청에 들어갈 수 있는 성적이었으나 자녀가 있어 입사할 수 없자, 공부를 더 하여 학교의 영양교사가 되었다.
엄마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좋은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나에게 자주 한다. 많은 사랑을 받던 엄마는 10대에 발견한 자신의 재능을 즐기기만 하고 미래를 계획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나간 20대 시절의 자신을 통해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교훈과 ‘무엇이든 정해진 시기를 놓치게 되면 나중에 더욱 많은 것을 잃고 후회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겼다고 얘기했다.
나는 이제야 오랜 기간 피해 왔던, 중·고등학교 때의 나와 마주하며 열등감으로 뭉쳐있던 학창 시절을 아쉬움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엄마도 자신의 행동을 성찰했기에, 자신의 삶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자기 잘못과 후회는 그 누구도 마주하기 어렵다. 하지만 뒤를 돌아볼 용기만 있다면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미국 작가 데일 카나기는 “인생은 진정 부메랑과 같다. 당신이 준 만큼 받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와 엄마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 모두 자신이 주는 만큼 받으며 살고 있지 않을까? 나는 앞으로도 나의 삶을 꾸준히 되돌아보며 보다 나은 사람으로서 성장할 기반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자신의 현재 모습을 성찰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