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쏜살같다. 벚꽃이 피며 봄 내음을 가득 풍기던 3월을 지나, 최고 기온이 약 30도에 육박하는 초여름이 다가왔다. 그리고 지난 22일부터 3일간, 우리학교에서는 여름의 열기를 느끼게 해준 청람축전인 ‘아네모네’가 진행되었다. 축제 기간, 학생들은 인문과학관 앞 잔디밭 일대에 모여 축제의 열기를 느꼈다. 나 역시도 부스에서 음식을 사 먹거나, 연예인의 공연을 보고 즐기며 스트레스를 해소하였다. 3일간의 축제는 고민과 학업에서 멀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끌벅적한 축제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땐 알 수 없는 공허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잠시나마 잊고 있던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압박감이 물밀듯 차올랐다. 그러나 심적으로는 할 일을 얼른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불안함을 느끼지만, 정작 행동은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게 된다. 마음은 불편하지만, 몸은 편한 모순(矛盾)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 답답함을 느낀다.
나는 이런 답답함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간단했다. 할 일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때, 행동으로 옮겨 할 일을 끝내면 된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부터는 무슨 일을 해도 예전만큼 크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대학 입학’이라는 큰 관문을 넘어, 방황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이 아직 채 가지 않은 것 같다. 낮은 동기부여는 스스로를 나태하게 만들었다. 나는 동기부여를 증진하기 위해, 그간 성취욕구를 고취시키고자 하였다.
성취욕구(成就欲求)는 높은 성과를 얻기 위해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말한다. 나는 목표를 설정하고, 해당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결국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며, 미루지 않고 해낸 것에 대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해당 과정에서 나는 여전히 답답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하였음에도, 왜 나는 답답해하는 것일까.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과제가 없는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라고 말이다. 나는 놀랐다.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랑 느끼던 감정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친구와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무엇을 ‘해야만 한다’라는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충분히 쉬어도 되는 상황임에도 말이다.
음악에선, 음악을 이어 나가기 위해 잠시 숨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해주는 ‘숨표’가 존재한다. 나는 내가 할 일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거나 놀 때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 휴식을 취하고, 놀았던 행위는 내가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잠시 나의 숨을 가다듬어 준 ‘숨표’와 같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해당 시간이 있었기에 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망중투한(忙中偸閑), 바쁜 가운데서도 한가한 겨를을 얻어 즐긴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약 3주가량을 남겨 둔 이번 학기를 마무리하고, 방학 동안 쉬어가는 것에 불편함과 답답함을 느끼기보다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