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있지 않은가, 집 앞에 가까운 식당이 있지만 ‘굳이’ 차를 타고 나가 ‘굳이’ 먼 곳으로 가서 ‘굳이’ 그 음식이 먹고 싶은 그런 날, 최근 사람들은 이런 날을 ‘굳이데이’라고 부른다. 가수 우즈(조승연)가 처음 말한 ‘굳이데이’는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라는 부사 ‘굳이’와 ‘하루, 날’의 뜻을 가진 ‘데이(Day)’의 합성어이며, “굳이?”라는 말이 나오는 행동을 하나씩 해 나가는 날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쉽게 말하자면 조개구이가 먹고 싶은 날, 누군가는 “굳이 인천까지 가서 조개구이를 먹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날 ‘굳이’ 인천까지 가서 조개구이를 먹는 날이 ‘굳이데이’인 것이다.
SNS를 살펴보면 많은 사람의 굳이데이를 볼 수 있다. ‘춘천 닭갈비가 먹고 싶은 날 굳이 춘천에 가서 닭갈비 먹기’, ‘E-BOOK으로 봐도 되는 책을 사러 굳이 동네 서점 가기’, ‘직접 내려 마셔도 되는 커피를 굳이 카페 가서 먹기’, ‘매일 타던 버스 타고 굳이 종점에 내려보기’ 등 사람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 ‘굳이데이’라고 말하며 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굳이데이를 알게 된 건 한 친구 때문이었다. 친구는 굳이데이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SNS 게시물을 공유하며, “우리도 이거 해보자! 재밌겠다!”라고 말했었다. 그때 나는 친구의 메시지에 “저게 뭐야? … 귀찮을 것 같아”라고 답했다. 당시에는 정말 “굳이? 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평소에 집 밖을 나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나는 그 무엇보다 ‘효율’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어떻게 사람이 효율적으로만 살아?’, ‘여행까지 가서 그래야 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떤 순서로 가야 최소한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 어떤 물건을 어떻게 사야 더 경제적으로 살 수 있는지 등 하나하나 따져보고 사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의 성격과 굳이데이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였다.
작년, 나는 같은 과 친구들과 가을에 천안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저녁이 다 되어서야 떠난 여행이었고, 목적지는 핑크뮬리가 예쁘다는 천안의 한 대형 카페였다. 늦은 저녁 도착한 카페에는 생각했던 핑크뮬리가 아닌 어두워서 형체를 알 수 없는 뮬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카페의 저녁 주문은 다른 때보다 빨리 마감되어 계획한 일을 전혀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었다. 평소라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이런 상황에 나는 짜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던 하루였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의 표정은 짜증은커녕 즐거운 것처럼 보였다. 분명 그날따라 되는 것은 없었지만, 그저 오랜만에 청주를 벗어나 타지에 간다는 사실에 신나있었고 하나뿐인 계획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그 자체가 재미있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으며,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의 추억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굳이데이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과정 과정이 귀찮을 수도 있고 그곳만을 갈 목적으로 나왔지만, 막상 도착한 곳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 과정이 그날 그때만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이었을 것이며, 훗날 그 시간을 되돌아보면 분명 추억할 만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시간과 경험을 통해 나는 나만의 굳이데이를 만들고 싶어졌다. 어느 날에는 평소에 가고 싶었지만 멀다고 가지 않았던 카페를 찾아가 보고 싶어졌고, 평소에 멀다고 차 타고 가던 길을 굳이 한번 걸어가 보고 싶어졌다. 또 어느 날에는 계획 없이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이러한 굳이데이를 사람들은 흔히 ‘낭만’이라고 말한다. ‘낭만’이라는 것이 거창하고 뜬구름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낭만은 생각보다 사소하고 별것 아닌 것에서도 찾을 수 있고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가 해보고 싶었으나 귀찮았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보면 된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에서 어떤 날엔 행복을 찾을 수도 또 어떤 날엔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 수도 있다. 그냥 귀찮다고 생각했던 일을 ‘굳이’ 한 번만 해보면 그 역시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알라딘》에서는 “오늘의 특별한 순간들은 내일의 추억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나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어느 날 행복했던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귀찮더라도 내가 하고 싶었던 소소한 일을 하나씩 해보며 추억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자신만의 굳이데이를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