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성장하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마음에 크고 작은 흔들림이 일어난다. 그럴 때 책은 독자의 마음을 다잡아주고, 힘듦 속에서 독자의 고뇌를 함께 나누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번 490호 교수의 서재에서는 <데미안>을 통해 학창 시절 불안감과 답답함 등을 해소하며, 지금은 학생들을 진심으로 다독여 줄 수 있는 데미안같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유아교육과 서윤희 교수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려 한다.

(유아교육과 서윤희 교수님/ 최슬기 기자 제공)
(유아교육과 서윤희 교수님/ 최슬기 기자 제공)

 

Q1. 교수님께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계기로 읽게 되셨나요?

제가 유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곱씹으며 읽는 책이 있는데,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입니다. 지금도 가끔 나의 깊은 진심을 알아채고 싶어질 때나 마음의 흔들림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을 때 이 책을 꺼내어 보곤 합니다. 아마도 이 책은 본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지점에서 저에게 감명을 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하자면, 열 살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을 상징하는 프란츠 크로머와 을 상징하는 데미안을 만나면서 자아를 발견해 가는 성장소설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선적인 요약을 넘어 주인공 싱클레어의 치열한 자아 찾기 과정에 주목하여 책을 읽다 보면 싱클레어의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임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제 청소년기부터 50대를 앞둔 지금까지 저의 성장 이야기로 곁에 두고 있는 <데미안>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책 내용으로 좀 더 들어가 보면 주인공인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에게 사과를 훔쳤다는 치기 어린 거짓말을 하게 되고, 이 사건을 통해 싱클레어는 내면의 자아 속에 존재하는 악의 세계를 인지하게 됩니다. 싱클레어가 자신도 모른 채 그 악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그것은 자신이 현실 세계에서 감당하는 온전한 자기 몫이 됩니다. <데미안>은 이 이벤트로부터 시작되는 싱클레어의 갈등과 방황,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한 선악에 대한 통찰, 자신에 관한 질문과 탐구의 여정을 담고 있고,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데미안>이라는 책을 한층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Q2. 교수님께서는 그 책을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셨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국민윤리 선생님께서 고전 문학이나 철학 서적 읽기를 강조하셨고, 그 덕분에 강제로 책 읽기를 하게 되면서 <데미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학업뿐만 아니라 임원 활동도 열심히 하는 학교 체제에 잘 순응하는 듯 보이는 모범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인 만큼 마음 한구석에서는 학교생활 안에서의 규칙의 불합리함, 선생님들의 비민주적인 태도, 또래 친구들끼리의 복잡한 얽힘과 인간 군상 등을 바라보며 교실 공간에서 탈출하고 싶을 만큼의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 답답함과 불안함이 어디에서 존재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데미안> 속 싱클레어의 고단하고 힘든 여정은 저에게 막연한 동질감을 느끼게 해주었고, 마음의 위안을 얻게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당시 제가 제출한 독서감상문은 다른 사람의 서평을 짜깁기하는 수준이었지만요.

그런데 대학에 입학한 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의 무료한 교원대 생활에서 탈출해 보고자 나에게 알 수 없는 묘한 감응을 주었던 <데미안>을 다시 꺼내어 보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 다시 만난 <데미안>라는 존재의 마음의 소리가 무엇인지 귀 기울여볼 수 있게 해준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읽으면서 해석하지 못했던 모호한 은유와 상징들이 내 마음의 목소리로 귀결되어 읽히기 시작하니 이 책이 한층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기억이 납니다.

 

Q3. <데미안>에서 가장 인상 깊었거나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너무나 유명한 구절이죠.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새가 한 세계를 깨뜨린다는 의미, 그 새가 아브락사스라는 신에게 날아간다는 의미를 헤아려 보고자 곱씹을수록 나의 삶에서 매번, 알에서 깨어 거듭나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일상을 살면서 매일 밤 자기 전 이 구절을 성찰할 수 있다면 내 삶이 좀 더 좋은 방향성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것은 단순히 선과 악의 안에서의 두 축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그것을 넘나들며 진짜 내가 원하는 목소리를 듣고, 그것을 믿고 노력하고 온전히 책임지는, 바로 내 존재, 나의 주체성에 대한 책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위의 구절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들려주는 조언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데미안이 치기 어린 눈빛의 싱클레어에게 담담히 내뱉는 조언은 마치 저에게 들려주는 조언 같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어. 그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어쩌면 커다란 알에서 깨어서 나오려는 몸부림은 꿈속 같은 허상이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알아챌수록 더 선명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Q4. <데미안>은 교수님의 전반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책은 저에게 삶의 방향성을 일깨워 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나이 들어가면서도 함께 두고 읽으며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고요. 제가 <데미안>과 비슷한 지점에서 감응을 얻은 책을 좀 더 추천하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입니다. 인생의 선과 악, 성숙하지 않은 인간의 자아 찾기 과정에 주목하는 책을 좋아한다면 대학 생활 동안 이 책과 만나보면 어떨까요?

모교에서의 교수 생활은 캠퍼스의 어떤 공간이나 순간을 지나치다 20대의 나와 조우하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주는데요. 이 책을 읽었던 벤치, 동아리 방이 있는 건물, 기숙사 공간 등을 만나게 되면 20대의 저와 <데미안>을 떠올려 보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지독한 사춘기를 겪었던 힘듦 속에서도 나를 찾아보고자 고뇌했던 20대의 저 자신을 다독여 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내가 선생님으로서 여러분들의 20대를 다독여 주는 데미안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다다르게도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이 책과의 인연이 더 깊어진 것처럼 느껴지네요.

여러분께 이 책을 소개하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데미안>이라는 책은 저의 성장소설이기도 하지만 데미안의 역할의 관점에서 선생님으로서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지는 성장소설로서의 2막이 열릴 것 같기도 하네요. 다시금 데미안이 말하는 이야기 텍스트에 좀 더 주목해서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제가 20대 학생과 자신이 일궈나가는 삶의 방향성에 대해 진심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선생님이 되려면요.

 

Q5.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는 전공수업뿐만 아니라 교양수업에서 아동문학과 그림책 관련 강의하는데, 그때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문학비평에서의 독자의 자율적인 위치입니다. 그림책의 글과 그림의 의미에 대한 해석을 나누다 보면 처음 학생들은 자신의 해석을 느끼고 말하는 것조차 낯설고 두려워하지만, 점차 독자마다 다르지만 제법 타당한 의미를 구성하고 나누는 과정을 즐기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점차 시각 예술로서 그림책을 읽는 새로운 방식과 나만의 해석의 재미에 눈뜨게 되죠.

이러한 방식은 텍스트만으로 이루어진 고전 문학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 같습니다. 문학 작품의 은유나 상징을 다른 사람의 해석에 기대어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이 의미 부여한 방식으로 해석해 보는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동안 입시에 매달리며 누군가 정해놓은 정답 찾기에 골몰한 책 읽기를 했다면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나만의 의미 찾기를 해나가는 즐거운 독서를 해보면 어떨까요? ‘교원대에서의 아주 특별한 경험에 도서관에 숨겨진 고전 읽기와 산책을 추가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그 경험과 사색이 10, 20년 후의 여러분을 더 특별한 지점에 놓아둘 수 있다고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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