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 지금, 사람마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기도 할 테고, 누군가는 어색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걱정하기도 할 것이다. 다만 고학년이 될수록 새로운 학기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나는 아직 해낸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조급함을 느끼기도 한다. ‘누구는 벌써 이만큼이나 공부했다는데’, ‘누구는 어떤 자료가 되게 많대’ 등 가볍게 오가는 말들이 ‘그럼 나는 얼만큼이나 온 거지?’로 이어져 시작도 전에 내가 이미 늦어버린 것만 같은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불안은 비교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누구만큼 공부를 못해’, ‘나는 누구만큼 예쁘지 않아’ 등 우리는 ‘타인을 기준’으로 ‘나’를 평가한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타인’이라는 목표는 까다롭다. 혹여나 내가 비교 대상만큼 공부를 잘하게 되더라도 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기에, 새로운 비교 대상으로 다시 나를 평가한다. 끝없는 평가에 결국 포기하고 내가 아무리 해도 이겨낼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거나 혹은, 오히려 타인을 깎아내려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합리화한다. 타인과의 비교는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고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불안은 기준만 바꾸면 된다. 똑같은 사실을 ‘나를 기준’으로 평가해 보자. 내 기준에서 나는 천재만큼 공부를 잘할 필요 없다. 또한 내 기준에서 나의 낮은 코는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로서 변한 건 없지만 ‘나를 기준’으로 평가하니 나름 괜찮게 느껴진다. 사람은 개인마다 약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약점이라고 열등감에 매몰될 거 없이 그저 ‘나를 기준’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목표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공부 능력이나 외모 가꾸기가 목표일 수 있지만 ‘나의 기준’에서는 아니다. 인생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삶의 가치를 목표로 노력할지 정하는 것 또한 ‘나’다.

<자유론>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좋다고 생각하는 길로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인간은 바로 그런 존재이다”라고 말하며, 각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자유가 가장 소중하다고 했다. ‘내’가 원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라면 그대로 향하면 되고, ‘나’의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매일매일 ‘내’가 만족할 만한 ‘나’만의 퀘스트를 묵묵히 끝내면 된다. 하루하루 쌓인 퀘스트들은 내가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에 나를 목표에 다다르게 해줄 것이며, 누군가의 목표를 따를 때보다 오히려 더 잘 해내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는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타인 또한, 타인만의 기준이 있다는 점을 되새기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는 흔히 ‘공감’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 핵심을 ‘공감’이라고 뽑을 만큼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공감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오히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나와 반대되는 입장의 상대방을 ‘나’ 혹은 ‘사회’의 기준으로 멋대로 평가하고 매도해 버려, 공감할 마음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감이란 상대방의 마음, 상대방의 감정, 상대방의 현재 상태에서 그 사람이 하는 생각을 내가 그 사람의 입장으로 들어가서 느끼고 지각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의 가치와 목표대로 나아가는 것처럼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도 자신만의 가치와 목표가 있고, 그 목표대로 나아가는 상대방 그 자체를 인정해 줘야 한다. 공감은 대화에서부터 시작한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주장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다. 나를 나대로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상대방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과 싸웠던 나, 그리고 수많은 것들과도 사실 대화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이번 기회에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주변의 누군가와 대화를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