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떠난 의사들, 투쟁(鬪爭)인가 이탈(離脫)인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행정절차를 본격화하는 등 강경한 대응으로 일관하며 의료계와 정부 사이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편 의료진 부족으로 인한 현장의 의료공백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정부는 비상진료체계를 안정화하는 조치에 주력하고 있다.
◇ 전공의·의대생에 이어 의대 교수들마저 집단행동 조짐 … 미복귀 전공의 ‘3개월 면허정지’ 현실로
보건복지부에서 서면 점검을 통해 전국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1만 2,225명) 근무 현황을 점검한 결과, 6일 오전 11시 기준 1만 1,219명(91.8%)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교육부에 따르면, 휴학계를 제출한 의과대학 재학생들 역시 전체 1만 8,793명의 28.9% 수준인 5,425명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의대 교수들마저 신입생 증원에 반발하여 공동성명을 내고 단체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며 의료계의 집단행동에 불이 붙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의료계의 움직임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6일 국무회의에서 전공의 집단행동을 두고 “국민 생명권을 침해하는 불법적 집단행동은 절대 허용될 수 없다”라며 2천 명 의대 증원에 대해 물러설 뜻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일 현장점검 결과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해 미복귀한 것으로 확인된 근무 이탈자에게 ‘면허정지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내고 있다. 정부가 행정절차에 속도를 낼 경우 빠르면 이달 말에도 면허정지 사례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7일에 있었던 브리핑에서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수련병원을 이탈한 후 타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에게도 ‘겸직 위반’ 추가 징계를 내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의료공백 장기화에 현장은 ‘한계’ … 병동 축소 운영 및 통폐합 본격화한 병원도 잇따라
정부와 의료계 사이 힘겨루기가 지속되는 동안,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 역시 보름 넘게 이어지며 의료현장도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의료진 부족으로 병동을 대폭 축소하여 운영하는 경우는 물론 ‘병동 통폐합’에 나선 병원들도 잇따르고 있다. 일명 ‘빅5’로 불리는 서울의 상급종합병원들마저 이러한 수순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지역 병원들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경북대병원 응급실은 매주 수·목요일 외과 진료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밝혔으며, 충남지역의 유일한 상급병원인 천안 단국대병원도 소아과·이비인후과·비뇨기과 응급실 진료가 중단되었다.
이러한 의료공백 악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6일까지 환자들의 피해신고 접수 건수는 408건으로, ▲수술지연이 300건으로 가장 많았고 ▲진료 취소 53건 ▲진료거절 38건 ▲입원지연 17건 등이었다. 그 외에도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는 병원에 남은 의료진들 역시 체력적·정신적 한계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 정부, 의료공백 장기화 대비에 나서 … ‘의료개혁 4대 과제’ 추진에 속력
정부는 6일 국무회의에서 의료공백 장기화에 대응하기 위한 1,285억 원의 예비비 지출을 심의·의결했다. 이는 전공의가 이탈한 병원에 대체인력을 배치하고,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간 의료 이용·공급 체계를 개선하는 데 쓰인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결과, 지난달부터 가동된 비상진료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매월 1.882억 원 규모의 건강보험 재정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정부는 의료개혁 4대 과제 추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료개혁 4대 과제는 ▲전공의 근무 여건 개선 ▲필수의료에 대한 공정하고 적절한 보상 ▲지역의료 체제에 대한 투자 ▲불가피한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부담 완화로 구성되어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개혁 주요 정책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이행하기 위해 대통력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출범을 위한 준비 TF(태스크포스) 운영을 시작하여 지난 8일 1차 회의를 열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의 갈등은 그간 수면 아래 도사리던 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의사들의 빈자리로 의료현장이 마비되어 있는 지금, 양자 간 충분한 대화와 이해로부터 의료체계 개선 및 정상화를 위한 합의점 도출이 시급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