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저 폐허를 응시하라. 저 눈빛을 주시하라. 저 울음을 기억하라. 인류는, 고작 이만큼 진화했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가자지구의 사진 한 장과 함께 표지에 게재한 글이다. 지금도 인터넷에 ‘가자지구’를 검색하면 “가자 역대급 최대 대규모 공습”, “이스라엘, 재차 가자지구 심야 기습” 등의 제목을 가진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작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올해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세계 역시 과거와 마찬가지로 짙은 전운(戰雲)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이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아직도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는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모두에게 사실 전쟁은 다소 일상적인 것이다.
남의 눈의 대들보보다 내 손에 박힌 작은 가시 하나가 더 아프다고 그랬던가. 지구 어딘가에서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도, 다른 나라에서는 전쟁 때문에 유가가 급등했느니 주식이 호재라느니 하는 소식들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린다. 우리 눈에도 전쟁은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철저히 남의 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 어떤 나라에도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Si vis pacem, para bellum”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뜻으로 로마 제국의 전략가였던 베게티우스가 남긴 말이다. 수천 년 전의 이 격언은 오늘날에도 거의 모든 나라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020년 국방예산 상위 5개 국가(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영국)의 합계액은 전 세계 국방예산의 62%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각국 국방비 지출 합계가 2조 2,400억 달러(약 2,940조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제 군사력은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자, 국가 경쟁력의 보증이 되었다.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국가들뿐만 아니라, 성장을 꾀하고 있는 국가들마저도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앞다퉈 무기를 사 모은다. 특히 전쟁의 아픔을 직접 겪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면서, 나날이 각자 더 많은 무기와 병력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 현재 국제사회의 실상이다.
평화는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었던 국제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껏 그 꿈이 실현되지 못했던 것은 우리가 모두를 적으로 여기고 서로를 경계하는, 지극히 소모적인 방식으로 평화를 되찾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앞에 놓인 저 폐허를 응시해야 한다. 아주 진지하게, 오랫동안 응시해야 한다. 세계적인 평화 사상가 요한 갈퉁은 평화는 어떤 경우라도 오직 평화적 수단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폐허 속에서 인류가 그토록 절실히 꿈꿔왔던 진정한 ‘평화’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