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육과 졸업생 심혜경
교직 생활 처음으로 고등학교 3학년, ‘고3’ 담임을 맡았다. 작년부터 가르치던 아이들이라 익숙했지만,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아이들이 고3이라니 낯설었다. 성인이 되기 한 걸음 전의 자리에 서 있는 이 아이들은 미성숙한 듯 성숙하고, 듬직하다가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처럼 자꾸 눈이 간다.
첫 상담, 졸업 사진 촬영, 수시 내신 마무리, 수시 원서 접수, 여러 번의 모의고사를 거쳐 이제 아이들은 대수능을 이십여 일 앞두고 있다. 교실마다 D-day가 칠판에 쓰여 있고,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의 얼굴보다 정수리를 마주할 때가 많다. 교실 내에선 자습 중이니, 정숙해 달라는 짤막한 문구도 출입문에 붙어 있어, 쉬는 시간에 교실로 간 나도 학생을 따로 불러내어 소곤소곤 용건을 전한다. 교실의 모습을 일별(一瞥)하고, 교실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서둘러 나온다.
다른 학년을 맡아 지도할 때보다 고3은 한층 더 애틋하고, 한층 더 건조하다. 이 녀석들이 어떤 마음으로 앉아 기를 쓰며 문제를 풀고, 보고서를 쓰고, 면접 준비를 하는지 알고 있어서 모든 선택과 그 결과가 애틋하다. 각기 다른 상황과 목적을 배려하기 위해 말도 감정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덜어 둔 채 교실에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바둑돌처럼 앉아 있는 아이들의 모습과, 대수로운 장난이나 칭찬 한마디도 마음을 흔드는 바람이 될지 고민하며 가만히 서 있는 내 모습은 참으로 건조하다. 교실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며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일별(一瞥)하고 물러 나와 괜히 복도를 서성이는 담임의 마음에는 많은 생각들이 맴돈다.
관심 없는 일별(一瞥)은 아니고, 나름 조심스러운 일별(一瞥)이다. 세 번 볼 것을 한 번, 본 듯 안 본 듯 보며 잘하고 있구나, 매우 피곤하겠구나, 자신과의 싸움에 치열히 임하고 있구나, 하는 말들을 속으로 가만가만 삼키는 것이다. 시끄러운 세상 소식은 차단하고 싶다는 듯 후드를 푹 눌러쓴 채 공부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흘낏 보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을 건넨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비슷한 마음인지 고3 교실이 있는 복도엔 밀도 높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제 이렇게 수일을 보내고 난 뒤 아이들은 각자 시험장으로 가 수능 시험을 보고 올 것이다. 어떤 결과를 얻든 자신의 노고를 위로할 줄 알고 대입이 끝이 아니란 것을 알기를 바란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여도 그간의 노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란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인생의 또 다른 시험에 임할 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기를 바란다. 학교 공부만큼이나 세상 공부도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긴 채 학교를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대학 합격 여부가 본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꼭 이해하기를 바란다.
교실을 일별(一瞥)하며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을 하나씩 떠올려 본다. 수많은 일별(一瞥)이 모여 아이들의 건강한 미래를 기원하는 마음이 된다. 날려 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운다는 한 시인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