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기자였던 나는 한국교원대신문 472호에 <혐오의 시대, 우리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자칼럼을 썼다. 2022 개정 도덕과 교육과정 시안 검토 공청회에서 난무하던 성소수자들에 대한 원색적인 혐오를 목격하며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했다. 이후 나는 혐오는 교사를 꿈꾸는 우리 예비교사들이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주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일상에서 혐오 문제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올해 여름방학, 본가인 대구에 내려와 있던 나는 시내에서 매년 여름마다 열리는 대구 퀴어문화축제를 보게 되었다. 매년 열리던 축제였기에, 수많은 인파, 그리고 그들만큼이나 수많은 경찰, 퀴어 퍼레이드 바로 옆에서 “동성애는 질병”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대구 퀴어문화축제에서는 기존의 축제에서 보기 힘들었던 광경이 펼쳐졌다. 퀴어문화축제 현장에서, 1,500여 명의 ‘경찰’과 500여 명의 대구광역시 ‘공무원’들이 집단 몸싸움을 벌였다. 홍준표 대구시장을 필두로 한 대구광역시는 퀴어문화축제가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여 불법이라며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는 입장이었고, 경찰 측은 “집회신고를 마친 집회는 도로점용허가를 받지 않아도 도로를 점거할 수 있다는 법원의 일관된 태도를 따른 것”이라며 집회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이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매년 사람들 사이에서 쟁점이 되어 왔지만, 축제에서 공권력 간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대한 법률 전문가들의 견해는 비교적 일관적이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승재현 선임연구원은 “집회 시위는 생각보다 넓은 범위에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헌법상 원칙”이라며 대법원의 판례를 따를 때 집회 시위 범위 내의 도로 점용은 허가된다고 밝혔으며.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일시적인 도로 점용으로 인한 대구시의 권리나 권한 침해보다는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헌법, 기본법 이익이 훨씬 크다”라고 말했다. 그 외에도 행정대집행은 현저한 위험이 있을 때 취하는 조치이므로 집회 신고를 마친 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는 과잉 금지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하지만 주목해 볼 법한 부분은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이 사건을 보도한 뉴스에 달린 댓글들에서는 “제발 저런 말도 안 되는 축제는 허가해 주지 말자”, “우리 아이들이 저런 걸 보게 하고 싶지 않다”라며 대구광역시의 조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입장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말에는 다시금 혐오가 내재해 있었다. 어쩌면 이들에게는 집회의 어떤 부분이 불법인지, 그것이 정말 불법이 맞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지금껏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던 소수자들의 움직임을 막아설 수 있는 하나의 구실이 생겼다는 것에 환호하는 모습들이었다. 만약 이것이 퀴어문화축제가 아닌 다른 축제나 집회였더라도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공격받았을 문제일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이번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이었다. 작년 나의 칼럼에 ‘혐오는 특정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배제하는 태도라고 정의된다’고 쓰여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당신의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라고 외치며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목소리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나와 다르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내려놓는 것,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