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주 성보중학교 교사
무슨 일 하세요?
아 교사에요.
어떤 학교요?
아 중학교요.
어우.....애들 말 더럽게 안 듣겠네요. 힘드시겠어요.
요즘 누군가 만나 직업을 소개할 때 정확하게 이 패턴의 대화가 이어진다. 대학생 때 내 교사의 꿈에 대해 1등 신붓감이 되겠다는 말에는 앙칼지게 나의 소명 의식을 줄줄 설명하곤 했었는데 요즘 힘들겠다는 사람들의 말에 도통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작게 그래도 애들이 귀여운 구석이 있어요. 이 정도? 어느새인가 교사는 꽤 어려운 직업이 되어 있다. 나도 수십 년 동안 교사의 길을 완주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한 학기에 5번 정도 생각하는데, 아직 이 길에 들어서지 않지만 그 곳을 바라보고 걷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말들과 상황이 더욱 혼란스러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때에 진정으로 교사의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정수(essene)만 남는 것이 아닌가 싶다. 세상만사 행복하기만 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직장을 가도, 대학원을 가도, 취업 준비생일지라도 그렇다. 그 속에서 교사는 어떤 직업보다 자주 절망하며 가끔은 뜨겁게 행복하다는 것을 내 경험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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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훈(가명)이만은 제발 우리 반이 되지 않기를 바랐었다. 물론 모든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나는 담임을 하면서 마치 반 아이들은 하늘이 점찍어주는 인연이라고 믿어왔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승훈이가 우리 반이 됐다. 지각하면서 사복 입고 슬리퍼 끌고 등교하는 모습을 아침부터 보자면 속이 갑갑하다. 학급 그림 대회 때 반에서 다 같이 재미있게 그림 그리고 있는데 뒤에서 일회용 전자담배를 꺼내 보였다. 그래서 열린 소선도 위원회 자리에서 모든 담임 선생님들이 계신 자리에서 클러치를 던지며 아무리 학생이 잘못했어도 그렇지 이렇게 사람을 세워 두는게 어딨냐고 말씀하시는 아버님과 아들은 똑같은 걸음으로 교무실을 나갔다. 물론 매일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자주 절망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개과천선했다는 해피엔딩도 없다. 그러나 회상해보면 그래도 내겐 뜨겁게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같이 공동훈육을 해주시던 교무실 선생님들, 늘 내가 힘들 것을 알기에 나 먼저 생각해주는 우리 반 아이들, 내가 해내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말해주던 남자친구. ‘슬픈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는 성경 구절 하나가 실감이 났다. 이들의 마음은 내가 승훈이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승훈이가 일찍 학교에 오도록 복지 선생님께 따로 부탁드려서 아침 프로그램을 신청해주었고, 훔치다 걸린 돈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수 있도록 함께 해주었다. 아이들에게 항상 승훈이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고, 울며 전화하시는 어머니에게 승훈이의 괜찮은 구석을 찾아서 크게 말씀 들릴 수 있었다. 수많은 좌절 속 나를 지켜준 이들이 있었기에 내겐 뜨거운 행복과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 넘친 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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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방금 to를 ‘투’라고 읽는 법을 가르쳐 줬는데 다시 물어보니 ‘더’라고 읽더니 내 표정을 보고 아아, 투 투 투 이런다. 기초 학력 책임제 수업을 위해, 영어를 읽지 못하지만 뉴진스를 좋아하는 성우에게 ‘OMG’ 노래 완창하게 도와주겠다며 꼬셨다. 물론 첫 시간에는 영어 가사를 한국말로 하나하나 알려주며 부를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이후에 영어 문장 10개를 외워서 쓰는 수행평가 하나 맞기를 목표로 수업 목표를 급변경했다. 눈뜨고 코베인 성우는 (지금도 종종 자기는 OMG하는 줄 알았다며 울부 짖는다.) 알려준 걸 지독하게 까먹었다. 담임 선생님이랑 학습 장애나 ADHD가 아닐까 할 정도였다. 한 아이는 그런 성우를 가르치는 나와 담임 선생님에게 ‘되는 애를 가르쳐야지. 선생님도 쟤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라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며 묻기도 했다. 그렇게 외웠는데 쓰기 시험에서 table을 tabel로 써서 틀렸을 때는 절망과 좌절 그 자체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도 자기 과목을 잠시 내려놓고 방과 후에 영어를 봐주셨다. 이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 성우가 자신 있게 5문장을 기적처럼 써내서 정말 눈물이 날 뻔했는데, 한국말 해석과 맞지 않은 문장을 써서 두 개가 틀려서 3개 맞아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칭찬하기도 전에 자기 이제 깨달았다고 귀엽게 난리친다. 성우 담임 선생님과 우리가 왜 이렇게 성우를 도와주는지 생각해봤었다. 둘 다 성우에게 위로받은 적이 있었다. 영어는 못하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해맑은 성우가 무언가를 해내고 기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였다. 이런 아이들을 통해 교직에 회의감이 들기도 하지만 정말 뜨겁게 가르침에 대한 열정이 불타오르기도 한다.
교사를 가장 자주 절망케 하는 것은 아이들이지만 행복하게 하는 것도 아이들이다. 학부모님과의 힘든 통화보다 더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우리 아이가 담임 선생님 좋다고 이야기해요.’, ‘선생님 정말 고마워서 밥 한 끼 사드리고 싶어요.’ 이런 말이다. 교직의 길에 서 있는 동안 좌절의 순간을 통해 더욱 인간이 되어가고 노하우를 쌓는 기회로 만들고 싶다. 힘닿는 때까지 아이들의 작은 말과 행동에서 뜨겁게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느낄 수 있고 가치있게 여기는 누군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교사의 길에 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