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소년으로 이름을 알린 백강현 군(11)이 서울 과학고를 자퇴하면서 계량화된 가치에 치우친 한국의 영재교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재들의 진급 시기가 초기 학령기임을 고려했을 때, 영재들의 사회·정서적 발달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진급 과정에서 우호적이고 안정적인 사회관계 형성이 이루어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국처럼 영재 선발 과정에 사회적 능력 발달 검사를 포함하는 등 영재들의 중도 이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 백강현 군의 서울 과학고 자퇴 … 계량화된 가치에 치우친 영재교육
‘영재발굴단’에 출연하여 천재 소년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백강현 군(11)의 서울 과학고 자퇴 소식이 알려지면서 한국 영재교육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관하여 지난 8월 20일, 백강현 군의 아버지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백강현 군의 자퇴 원인이 조별 과제 왕따를 비롯한 학교폭력 때문이라고 밝혔다.
많은 언론에서 백강현 군의 자퇴 원인을 학교폭력 사태에 중점을 두어 집중 보도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영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한국 영재교육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빠른 교육과정 진급 후 환경 적응에 어려워한 우리나라 천재들의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 당사자들인 송유근(25) 씨와 김웅용(61) 씨는 유년기 시절 학업적인 측면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두각을 보였다. 이후, 송유근 씨는 8살에 최연소로 대학에 입학하고 김웅용 씨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선임연구원이 되었지만 둘 다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실패한 천재’로 언론 보도되었던 사건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지 능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재 한국 영재교육 시스템이 이들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 인지 발달이 중심인 한국의 영재교육, 사회적 능력 발달이 핵심이 되어야
최근 관련 전문가들은 영재라는 것을 수치로 증명하고 이들의 인지 능력을 발달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현재 한국 영재교육 시스템에 큰 허점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영재들의 사회·정서적 발달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된 백강현 군(11)의 사례와 같이 보통 월반 혹은 진급하는 영재들은 아동기나 초기 학령기 시기에 해당한다. 초기 학령기는 사회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친구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시기이다. 이에 관하여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서은 교수는 초기 학령기에 또래와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청소년 혹은 성인들과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오는 강한 스트레스로 자신의 원래 능력까지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전문가들은 영재들이 또래들보다 앞선 교육을 받으면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에 대해 '큰 물고기-작은 연못 효과'로도 정의한다. 뛰어난 집단에 들어가게 되면 학문적 자아개념이 떨어져 실제 성적도 떨어진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또래보다 뛰어난 영재들이 진급하여 교육받는 것이 이들에게 무조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없다.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개인 수준에 맞는 진급과 좋은 관계성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어떻게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가이다. 따라서 지금은 나이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회적 성장이 가능한 방안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 외국의 영재교육, 영재의 사회적 능력 발달 매우 중요시해
해외에서도 영재들의 사회적 능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에서는 사회적 능력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확인하는 검사가 영재 선발 과정에 포함되며 특히 ‘심리적 성격 특성과 참여 정도’를 실시하여 진급 시스템 활용에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또한, 최근 싱가포르에서도 영재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개별 연구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도 영재교육 시스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진급 환경의 동료들과 지나친 경쟁을 하지 않고 학습적 동기 유발 측면에서의 도움이 되도록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나 그 외의 사정으로 인하여 진급 이전에 영재원과 같은 커뮤니티 활동에 제약이 있는 영재들을 위한 제도가 여전히 미비하다는 목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다.
◇ 영재들의 중도 이탈 문제 … 법적으로 전문가를 구성하여 정서적 활동 지원해야
백강현 군 같은 영재학교 이탈 학생은 해마다 꾸준히 등장한다. 학교정보공시사이트 '학교알리미'와 종로학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7개 영재학교를 떠난 학생은 87명에 달했다. 전체 학생 대비 중도 이탈률은 0.9%로 전체 고등학교(3.3%)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문제는 최근 5년 사이 영재학교 중도 이탈이 심화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영재학교 중도 이탈 학생은 한 자릿수에 계속 머물다가 2018년을 기점으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육부 관계자는 "영재학교·과학고 사회통합 전형 입학자 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입학 전 수학·과학 학습을 지원하고, 입학 후 한국과학기술원 재학생 멘토링 등을 지원하고 있다"라며 "고도 영재 지원과 관련한 정책연구도 추후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 영재교육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규 영재교육 전문가는 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영재들의 교육적 요구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맞지만, 법적으로 영재학교에 상담교사 및 그 분야의 전문가를 구성하여 정서적인 활동 및 봉사활동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조기 입학생의 경우 학교 부적응 문제에 더욱 취약하다고 지적한 교육계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조기 입학한 영재들의 경우 선발 이후 학교 적응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하여 학업 능력뿐 아니라 또래 집단과 교류·소통하기 위한 정서적·신체적 성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