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선배들과 학교 앞 술집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20명 정도의 학생들이 들어오더니 각 테이블의 소파 한쪽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 중 한 학생이 우리 테이블에 오더니 양해를 구했다. “1학년이랑 2학년 간 대면식을 진행하거든요. 조금 시끄럽더라도 양해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우리는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흔쾌히 승낙했고, 몇 분 후 그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들렸다. “얘들아, 우리 이거 잘해야 해. 못하면 선배들한테 혼나. 알았지?” 아마도 대면식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면 3학년, 4학년 선배들에게 혼난다는 말이었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 13학번 새내기들이 술집 언저리에 도착했다. 얼핏 20명 정도 돼 보이는 13학번들은, 그러나 술집 안으로 모두 들어오지 않고, 그들 중 한 사람만이 먼저 술집에 들어온다. 가장 먼저 술집에 들어온 새내기가 외친 말은 대략 이렇다. “안녕하세요, 아무개에서 온 13학번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자기소개를 큰 소리로 하라는 지시를 들었는지 제법 큰 소리였다. 그 모습을 보는 2학년들의 반응은 대략 이렇다. “(소리가)작아”, “안 들려”, “다시 해”. 새내기는 같은 말을 다시 한번, 더욱 크게 외친다. 하지만 선배들의 반응은 변함없다. 세 번째에 외치듯 말을 하고 나서야 선배들은 새내기를 자리에 앉힌다. 두 번째 새내기도, 그 다음 새내기도 똑같은 과정을 겪고 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군기’ 잡는 모습이었다. 1학년은 그저 학교에 입학했을 뿐인데 아무런 이유 없이 선배들로부터 겁을 먹고 위압감을 느껴야 한다. 해당 학과의 대면식은 새내기들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조성된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당장 입학한 새내기들에게 선배의 권위를 보여주고 말 잘 듣는 후배로 만들기 위한 이벤트다. 그리고 여기에는 선배가 단지 선배라는 이유로 후배로부터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후배는 누군가가 선배라는 이유로 그를 존경하고 윗사람으로 대접해야 할 이유가 없다. 선배는 후배보다 먼저 대학교에, 사회에, 같은 학업의 길에 나선 사람이고, 그 점에서 후배는 선배의 선택을 존중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그가 선배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을 때 그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교감이다. 자신보다 많은 경험을 한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지켜 마땅한 예의다.
후배가 그러한 존중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에 미리 ‘군기’를 잡는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군기’를 잡기 전에 스스로 선배를 존중해 주면 좋은데, 그렇지를 않으니 무섭게 나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내게는 이 말이 대학 내에서 음주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니 대학 내 주류 반입을 금지하자는 노파심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사람은 매년 달라지는데, 편견은 매년 그대로다. 괜한 노파심으로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