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교과서에서는 인물의 성격이 한 작품 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인물을 ‘평면적 인물’, 인물의 성격이 한 작품 속에서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성격이 변화하여 새롭게 발전하는 인물을 ‘입체적 인물’이라 한다. ‘흥부와 놀부’에서 ‘흥부’, ‘콩쥐팥쥐’에서 ‘콩쥐’, ‘심청전’의 ‘심청’. 이들처럼 주로 소설 속 인물들이 평면적 인물이라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에게 소설 속에 비춰진 하나의 성격만이 존재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일평생 한 인간이 모든 선택의 기로 위에서 하나의 성격으로만 살아간다는 말은 많은 이들에게 동의를 구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저 인간이 가진 복잡다단한 내면 중 어느 한 면모만 보이는 것이라면, 사실은 인물이 입체적이라는 것은 그 인물의 성격이 바뀐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숨겨진 면모를 가진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든 인물을 입체적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다채로운 내면을 가진 한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 주로 인물의 말과 행동을 살핀다. 하지만 어떻게 변화할지도 모르는 한 인물을 고작 몇 가지 언행만으로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게 더 나아가 한 인물을 면밀히 살피기 위해 우리는 고립된 개인으로 보는 것이 아닌 사회적 구성원으로 파악한다. 실제로 문학의 한 소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사’ 즉, ‘인물의 고유한 이야기’를 동원한다. ‘홍길동전’의 주인공 ‘길동’이 왜 율도국을 정벌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원통함이 서려 있는 서얼이라는 신분을 고려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소설 속 허구 인물의 성격을 판단하는 데도 다양한 요소들을 동원한다.
반면 우리가 살아 나가고 있는 세상 속 우리는 한 사람의 성격을 너무나도 단순하게 일반화시켜 버리고 있는 실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을까? “넌 MBTI가 뭐야?”, “넌 E같아”, “영혼 없는 게 T같다” 등. 우리는 누군가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서로에게 이름, 나이 뒤 MBTI를 묻곤 한다.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해, 나의 앞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16가지로 구분된 성격 유형의 틀에 우리를 꿰맞추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쩌면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MZ세대들에게 MBTI는 인간의 복잡한 성격을 쉽고 간단하게 분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단순한 흥미를 넘어 학습, 코칭, 의사소통, 연애 스타일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그 인기가 쉽게 꺼지지 않고 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정재는 “MBTI가 무엇이냐. 정우성과 같은 MBTI 아니냐?”라는 질문에 “제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MBTI 믿지 말라고 하던데? 그게 되게 오류가 많고, 인간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하고 깊은 내면을 가지고 있는데, MBTI는 몇 개 안 되는 카테고리로 사람을 구분하려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사람은 단순한 것을 좋아하고,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을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라고 쉽게 정의하고자 하는 욕심에, 단편적으로 판단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MBTI 이전에는 혈액형이 또 그 이전에는 별자리가 유행했던 것처럼 꽤 오래전부터 단순하게 누군가를 파악하는 것에 대한 선호가 즐거움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우리는 하다못해 소설 속 인물의 성격을 파악할 때도 인물이 살아온 환경에 비추어 보는데, 실제 마주한 사람을 알아가는 위해서는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이 마땅한가?
인물의 성격은 개인이 가지는 생활 습관, 언어, 외양, 취미 등 환경의 총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한 겹이 아니다. 수많은 미사여구 중에서 사람은 하나의 단면만을 가진 단순한 인물이 아님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이다. 모든 인물이 고전소설 속 인물처럼 선과 악으로만 구분되는 것이 아닌 그 안에는 한 단어로 정의내릴 수 없는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단어로 한 사람을 창조해 내지 말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마음을 공유해 보자. 역지사지(易地思之).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의 고사성어처럼 상대방이 살아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불완전한 속성을 지닌 한 인간을 단면적으로 정의 내리려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