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가수 문빈이 우리의 곁을 떠나면서 한국 연예계에는 다시 한 번 슬픔이 찾아왔다. 이 슬픔은 결코 처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2017년에는 샤이니 종현이, 2019년에는 설리와 구하라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이외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연예인들의 비보까지 헤아리면, 한국 연예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극들은 왠지 우연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뉴욕타임즈지는 故 문빈을 비롯한 한국의 20대 유명인들의 죽음을 보도하며 “그들의 죽음은 한국의 가장 인기 있는 문화 수출 산업 중 하나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도록 했다”라고 전했다. 한류, K-POP 등이라 불리며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한국 연예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길을 걸어온 것일까.
대중으로부터 잊히지 않기 위한 끊임없는 경쟁, 사소한 말투나 표정에도 쏟아지는 평가들, 살인적인 스케줄, 사생활에 대한 과도한 통제와 감시. 이들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위로를 주는 일을 하면서도 정작 스스로에게는 그 어떤 행복과 위로도 줄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카메라 앞에서는 늘 밝은 표정으로 웃던 그들의 몸과 마음은 사실 망가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 대중문화가 오래 전부터 껴안고 있었던 구조적인 모순이었다.
사람들은 슬픔에 빠르게 무뎌진다. 그러고는 쉽게 잊어버린다. 더구나 자신의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문제에 사람들은 놀랍도록 무관심하다. 연이은 가요계의 슬픈 소식들도 그저 안타깝기만 한 이슈로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 잊혀져버렸다. 그 사이에 또 다른 누군가는 하루하루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 대중문화가 안고 있는 이러한 모순은 결코 연예계에 직업을 두고 있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 문화의 향유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를 그저 ‘안타까운 남의 일’이 아니라 ‘반복되어서는 안 될 우리의 일’로 여겨야 한다. 문화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문화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책임이 있다.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울고. 배고프면 힘없고, 아프면 능률 떨어지는 그런 자연스러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내색되고,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아티스트분들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인 만큼, 사람으로서 먼저 스스로 돌보고, 다독이고,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병들고 아파하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종현이 세상을 떠난 후 가수 아이유가 한 시상식에서 했던 수상소감의 일부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대중, 바로 우리의 시선도 분명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연예인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를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 모두가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들을 기억하며 더욱 책임 있는 문화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를 웃게 해주는 이들이 자신의 삶을 살며, 더욱 행복하게 우리 곁을 지켜 줄 수 있도록 우리 문화가 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