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핫플레이스, 자연, 경치, 맛집 이 말들은 모두 제주도하면 떠오르는 말들이다. 천혜의 자연경관, 아찔한 절벽, 웅장한 오름과 한라산까지 제주도는 누구나 인정할 법한 대한민국의 대표 관광지이다. 그러나 43일만큼은 밝고 활기차던 제주도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어둠과 적막이 드리워지는 듯하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만큼 슬픈 장소다. 1948년과 1949년의 제주도를 떠올릴 때마다, 화산이 만들어 낸 장엄한 풍경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아름답지만 아름답다는 말을 꺼내기가 두렵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용암 동굴 속에 숨어 있다가 학살을 당한 도민들, 한라산으로 숨어들었다가 사냥을 당한 도민들을 생각하면 제주도는 아름다운 만큼 슬픈 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한날한시에 이집 저집에서 터져 나오던 곡소리,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낮에는 이곳저곳에서 추렴 돼지가 먹구슬나무에 목매달려 죽는 소리에 온 마을이 시끌짝했고, 5백 위()도 넘는 귀신들이 밥 먹으러 강신하는 한밤중이면 슬픈 곡성이 터졌다.”

이 내용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제주 4.3 항쟁은 몇 십 년 전까지는 언급은커녕 생각조차 금기시되던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말하지 못했고, 생각하지 못했다. 많은 제주도민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묻었지만, 슬픔과 억울함을 말하지 못했었다. 그 때 죽어 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죽어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고통 받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로 차가운 바닥에서 총과 칼에 목숨을 잃었다. 누가 죽었는지, 얼마나 죽었는지조차 제대로 알 수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무더기로 묻혔다.

제주 4.3 항쟁은 명백히 이념 갈등으로 인한 무고한 시민들의 학살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절실히 생각나는 요즘이다. 제주 4.3 항쟁은 정치인들의 여론몰이와 프레임 씌우기에 이용되고 있다. 무고한 피해자들을 반란을 꾀하는 폭도들로 몰아가고, 국민들을 둘로 나눠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사탕 발린 말로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한 말만을 뱉어 내고 있다. 이것이 2023년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2023년은 제주 4.3 항쟁의 75주기이다. 민주화 이후 제주 4.3 항쟁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이 시작됐고, 정부 역시 민간인 학살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정권과 집권 여당이 4.3 항쟁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있으면, 또 다른 국가폭력이 떠오르게 한다. 윤 정부 출범 이후 여당 인사들은 4.3에 색깔론을 뒤집어씌웠다. 심지어 국회의원 중에는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한 뒤 “4·3사건은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말한 국회의원도 있을 정도였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으로 공식 규정된 사건을 북한의 지령이라는 낡은 반공 프레임에 가두려는 발언이었다. 제주 정치권과 도민들이 일제히 규탄했지만 모 국회의원은 나는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 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왜곡을 멈추지 않았다. 극우세력들은 오늘 이 순간 제주 4.3 항쟁 75주년 추념식 주변에서 왜곡과 혐오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이 흘린 눈물과 피 위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들의 피를 욕하고 폄하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더 이상 역사가 정치인들의 민심 얻기와 표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한다. 더 이상의 편 나누기와 갈라치기가 대한민국에서 없어졌으면 한다. 서로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멈췄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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