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외교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안 제3자 변제방식을 발표했다. 정부 산하 재단들이 일본 피고 기업을 대신하여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들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고, 현재 계류 중인 관련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에도 판결금 등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이에 관해 언급하며 일본과 미래 지향적 파트너로 나아가야 한다고 발언하였으나, 이에 민족문제연구소 등의 단체들은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전범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두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을 둘러싼 갈등이 점차 정치계·교육계로 확산하고 있다.
◇ 윤 정부의 제3자 변제방식, 과연 무엇을 위해 이루어졌나?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전범 일본 기업인 ‘신일본제철’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각 1억 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후 2019년 7월 일본은 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하고, 다음 달 한국 정부 역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통보하며 몇 년간 한일관계가 경색된 것이 이번에 발표한 피해배상안의 배경에 대한 외교부의 설명이다.
외교부의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입장 발표문’에 따르면,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양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하여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의 장으로 나아가자”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제3자 변제방식’을 택한 것이다. 지난 15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은 “조화롭게 해결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책무이며, 배상안 논쟁 이후 구상권 행사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하며 제3자 변제 방식의 합리성을 강조했다.
일본 또한 제3자 변제 방식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이다. 일본 자민당 의원 마쓰가와 루이는 인터뷰에서 “기시다 총리는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과거사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기본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새로운 사죄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했다. 기시다 총리는 다가오는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릴 G7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을 초청하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활발하게 소통하는 ‘셔틀외교’의 포문을 열었다.
◇ 피해자들의 계속되는 항의 ··· 그들이 원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난 3월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 따르면, 피해자들(양금덕·김성주)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이다. 하지만 한국 주도의 ‘제3자 변제’ 방식은 일본의 공식적인 잘못 인정과 책임 인정이 동반되지 않은 방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3월 8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에서는 정의기억연대와 대학생역사동아리연합이 피해자들을 대변하여 최근 정부가 발표한 강제징용 해법안에 대해 강력히 반대 의사를 표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정부는 전쟁 범죄의 가해국, 가해 기업의 책임 인정과 사죄 법적 대상이 배제된 강제 동원 해법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에 동의하는 유족들도 생겨나면서 피해자들과 유족들 간의 의견 마찰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발언 중 심규선 재단 이사장에 따르면 대법원 확정판결로 승소한 피해자 15명 중 생존자 3명(양금덕·김성주·이춘식)은 완고히 반대하고 있지만, 피해자가 사망하여 법률적 권한을 인수인계 받은 유족들 중 상당수가 제3자 변제에 찬성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이전 법안보다 더 진전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보상안을 마련하는 것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 강제징용 피해배상··· 우리에게 남은 과제들은
외교부의 입장문 발표 이후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을 둘러싼 갈등이 교육계로도 확산되고 있다. 진보 교육계를 중심으로는 교육과정에 없는 사회적 현안이나 기념일에 대해 가르치는 계기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교육당국의 지침에 따르면, 교사는 사회적 현안에 대한 학생의 이해가 필요한 경우 계기교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사의 개인적 견해가 개입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역사교육의 방향에 대해 우리학교 역사교육과 박찬교 강사를 인터뷰한 결과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주체적인 역사의식’이라고 발언했다. 즉 타인의 말이나 여러 매체에서 다루는 내용들을 맹목적으로 믿을 것이 아니라 적어도 2가지 이상의 관점을 스스로 찾아보고 자신만의 역사적 견해를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박 교수는 이에 덧붙여 강제징용과 같은 역사적 문제를 인식할 때에는 정치적 핵심이 되는 부분보다는 문제의 기본적인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