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싸늘해지는 겨울, 교사가 되기 위해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자, 시작일 임용고시가 한창이다. 제각각의 이유로 교사의 꿈을 품은 사람들은 열과 성을 다해 그 문을 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 끝에, 그들이 교육 현장에 발을 디뎠을 때의 표정은 어째서인지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
인터넷으로 여러 신문을 보다 보면, 근래 유독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열심히 수업하고 있는 선생님을 뒤로하고, 교단에 누워 휴대폰을 사용하는 학생’, ‘수업 시간에 졸던 학생을 깨웠더니 흉기로 공격받은 선생님’. 이상적인 교육 현장을 기대했던, 꿈을 가진 선생님들은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고, 교직을 후회하고 또 발길을 돌린다.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배움을 향해 나아가야 할 교실 공동체 속의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는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비정상적이다. 어느 관계보다 진지하고, 그러면서도 친밀해야 하지만 교실 속에는 ‘힘’의 논리와 함께 학생과 교사는 그저 서로의 권리와 권위만을 주장한다. 이러한 교실 속에서는 제대로 된 교육은 물론,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교실의 현장이 이렇게 됐나요?’ 질문하면, 학생들은 “교사가 지나친 권위를 내세우고 자신들을 존중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교사들은 “요즘 학생들이 변해서, 예전과는 다르게 선생을 존경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 같다. 평행선처럼 전혀 마주하지 않는 교사, 그리고 학생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는 서로를 ‘존중’하려는 시도조차, 마음조차 사라져 버렸다.
과거에는 교사의 권위가 너무나도 비대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우스갯소리로 “예전에는 다 그랬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교사의 체벌은 당연했고, 교사의 말은 당연히 ‘복종해야 할 것’이었다. 이러한 교실 속 학생들의 권리는 중요치 않은 것이었다. 교사들은 가르침이라는 명목하에 계속해서 권위를 내세웠다. 하지만 지나친 처벌에 대한 사회적 찬반이 계속되었고,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더 나아가 최근에는 ‘학생 인권조례’를 통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학생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교실은 변화하지 않는다. 교권과 학생의 권리는 충돌해야만 하는 권리인가.
우리는 너무 이상을 꿈꾸기만 한다. 많은 교육 서적에서는 이러한 교실의 이상을 너무 먼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빈(Beane)은 그의 저서 ‘가르치는 이유’에서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학생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사람으로 대화하는가?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발언권을 학생에게 주는가? … 학생을 존중하는가?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미 너무 오랫동안 학교나 교실을 민주적으로 만드는 일을 기다리기만 해 왔다. “이제는 실천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