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찬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해 보입니다. 온몸은 울퉁불퉁하고, 바지 주머니, 양말, 신발 안에 무언가 가득 차 찌그러져 보입니다. 아이가 잔뜩 들고 있던 건 꼭꼭 숨겨 뒀던 자신들의 감정이었습니다. 웅덩이에 빠졌을 때, 기대하고 갔던 동물원의 문이 닫혀 있을 때, 친구가 자신에게 딸기잼을 뿌렸을 때, 그때마다 찬이는 “괜찮아”라며 짜증난 감정, 슬픈 감정, 불쾌한 감정을 자신의 곳곳에 꼭꼭 숨겨 두었습니다. 숨기고, 숨기고 또 숨기다, 더는 내 감정을 숨길 곳이 없었던 찬이는 결국 폭발합니다. “나 안 괜찮아!”
찬이라는 아이의 이야기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였지만, 어째서인지 제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웁니다. 어른들은 사회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감정을 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화내면 안 돼.”, “네가 참아야지.”, “울면 나쁜 어린이야.”, “친구랑 포옹하고 화해해.”, …, “‘괜찮아’라고 해.”
그렇게 자라 왔던 아이들은 화나는 상황에서도, 억울한 상황에서도, 슬픈 상황에서도 씁쓸한 웃음을 짓습니다. 진짜 괜찮은지 안괜찮은지 돌아볼 겨를은 없었습니다. 그저 괜찮다고 말하는 것만이 갈등을 피하는 편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나의 감정을 짓누릅니다. 점점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숨기는 데 익숙해져 갑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감정조차 알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의 감정의 색은 퀴퀴한 무채색으로 흐려져 가고, 우리 세상은 웃음도, 울음도, 화도 없는 흑백의 회색 도시가 되어 갑니다.
정서·행동장애에 대해 배우며, ‘무드미터(mood metor)’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감정과 정서의 상태가 어떤지 스스로 고민하고, 어느 색의 감정을 느끼는지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였습니다. 처음 무드미터 앞에 섰을 때, 그 앞에서 무수한 고민이 들었습니다. ‘정말 내 감정을 표현해도 될까?’, ‘지금 나는 도대체 어떤 감정인 걸까?’ 처음에는 도무지 내 감정을 꺼낼 용기가 없었습니다. 적당히 ‘안온한’이라는 감정 칸에 제 이름을 붙이고 말았었습니다. 하지만 매주 무드미터 앞에 섰을 때, 나의 감정에 대해 더더욱 고민하게 되었고, 이제야 나의 감정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리고 나의 감정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더욱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그때야 제 마음속 도시는 형형색색의 감정으로 빛났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감정에 솔직해져 본 적이 있습니까? “괜찮다”라고만 말하기에는 우리 세상에는 셀 수 없는 수많은 색의 감정이 있습니다. 찬이는 내 감정이 무엇인지 아는 것, 이해하는 것, 그것이 나를 알아가는 길이자,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합니다. 또 용기를 가지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볼 수 있는 용기, 그걸 표현했을 때 일어나는 일을 마주할 용기를 말입니다. 언젠간 우리 세상이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노란색의 다양한 감정들로 색칠되고, 서로의 감정이 존중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감정은 지금 어떤 색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