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과 세계인식

  최근 어느 신문은 “‘미국박사’만 있는 국책연구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런 연구소가 계량화 중심의 미국사회과학의 영향을 받아 수출량이나 GNP의 증가 외에 노동이나 사회보장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보수 정권은 물론 소위 ‘진보’ 정권이라고 해도 그런 보수적인 연구소의 연구결과에 근거하는 한 경제발전 외에 사회발전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계량적 경제전망에 밝은 것도 아님은 10여 년 전의 IMF 사태를 그 어떤 국책연구소도 예상하지 못한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책임을 진 연구소는 하나도 없었다. 책임은 커녕 사과 한 마디 한 연구소도 없었다. 이점은 언론도, 대학도, 심지어 정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현상은 국책연구소에 한정되지 않고 대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연구 기관이나 언론 등 문화부분, 심지어 영화나 음악 등의 예술부문에도 적용되는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한국문화는 미국문화의 아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모든 분야의 모델은 미국에서 나오고, 미국이 보는 세계, 심지어 미국이 보는 한국이 우리의 세계이자 한국이 된다. 미국에서 인정하는 한국만이 진정한 한국이 된다. 그래서 한국사나 한국어나 한국문화의 연구자들도 미국에 가고, 그 분야 극소수 미국인의 평가를 애타게 고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한국은 미국의 축소판이다. 미국에서 특유하게 발전한 것이 한국에서는 바로 그대로 먹힌다. 여기에 할리우드 영화나 TV가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 일본이나 유럽보다 훨씬 빨리, 할리우드와 같은 시기에 한국에서 동시 상영되는 그것들은 한국문화의 모범이 돼왔다.
  위 기사는 그런 현상을 ‘CNN을 통해 아랍을 보는 형국’에 비교했다. CNN은 미국 언론 중에서도 보수적인 것이다. 미국의 사회과학이 모두 계량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미국의 언론도 모두 보수적인 것만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주류인 것은 분명하다. 미국에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필요하지만, 여기서는 그 점보다도 한국에서는 언제나 미국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본다고 하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과거에는 경제적으로 발전되지 못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으나 지금 수량적 경제력이 세계 10위권 전후라고 하는데도 주체적인 자기안목을 갖기커녕 도리어 더욱 더 미국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면 문제는 경제발전만이 아닌 듯하다.
  심지어 우리의 진보적 사상이라고 하는 것도 엄밀히 따져보면 역시 미국적이거나 적어도 서양적인 것이 아닌지 모른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리라. 그는 1980년의 5.18민주항쟁 등 정치적인 수난기마다 미국의 개입에 의한 정치탄압을 당했으나 역시 그러한 탄압으로부터의 탈출 역시 미국의 개입에 의한 미국에서의 망명생활로 가능했다. 그런 그가 권력을 잡았을 때 친미정책을 수행한 것은 당연했고, 그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 역시 친미정책인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다.
  한편 일본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다. 아직 친일논의는 친미라는 논의와는 달리 여전히 문제되고 있으나 갈수록 옅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에 와서 그렇게 변했다. 그러나 친일은 친미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구조를 가졌다. 아니 친일에 의한 지난 35년(1910-1945) 또는 40년의 일제 식민지 경험은 그 후 한국의 식민지적 구조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일본 근대화의 대부인 니토베 이나조는 “식민은 문명의 전파”라고 말했다. 이는 서양의 모든 지도자들, 아니 서양인들의 생각이었다. 친일세력은 이에 동조했고 지금 친미세력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아니 일제강점기나 현대 한국에서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조하고 있다. 따라서 그 전의 한국 또는 한반도는 ‘미개 야만’이었다. 일본의 사학자는 조선의 역사가 정체적이고 민족성은 당파적이라고 했고, 서울의대의 전신인 경성의학전문학교의 교수는 조선인이 해부학상 야만에 가깝다고 했다. 일제 말에 조선의 지도자라는 자들은 대부분 일본의 전쟁에 젊은이를 내보내기 위한 선전수가 됐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지는 않지만 얼마 전까지도 ‘엽전’이라고 자조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음속으로는 적어도 미국보다는 못하다고, 후진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해방 후 한국을 직접 통치한 미국은 친일파를 중용했고 이승만 정권 역시 친일파를 중용했으며 친일 청산의 주장은 빨갱이로 몰렸다. 박정희 정권은 친일정권 자체였다. 박정희 및 그 이후 보수정권을 이은 이명박 정권은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친일 세력에 호의적이다. 지난 1백년 우리는 그야말로 너무나 정신없이 살아오지 않았나? 특히 지금 그렇지 않은가?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 할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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