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민(지리교육·20) 학우

1755111일 오전 940, 대지진이 포르투갈 리스본을 강타했다. 무너지고 불타는 건물들을 피해 해안으로 달려간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거대한 쓰나미였다. 5만 명이 죽었다. 만성절을 기념하여 성당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 신의 사랑을 찬양하며 축제를 즐기던 그들은 죽고, 다치고, 사랑하던 이를 잃게 되었다. 고통이 신의 뜻이라고 믿었던 수많은 사람은 신을 저버렸고, 이성의 시대가 찾아오게 되었다.

여전히 신을 믿는다는 자들은 고통을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당시,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인 금란교회 담임목사 김홍도는 하나님을 안 믿어서 받은 천벌이라고 말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국내 최대 장로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 담임목사 김삼환은 세월호 사건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개신교인은 이러한 말에 동조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세상 모든 일이 신의 섭리 안에 있기에 어쩔 수 없다는 그들은, 그렇게 고통을 세계의 바깥으로 내몰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막지 못한 신은 선한가? 선하다면 전능하지 않은 것 아닐까? 이러한 질문은 불경하다고 여긴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신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인간의 고통 앞에 침묵하는 창조주를 우리가 진정 따를 수 있는지, 무정한 신을 믿어야 하는지 말이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질문을 잃어버렸다. 질문은 금기시되고, 어쭙잖은 위로와 자신의 의로움만이 드러날 뿐이다. 그냥 네가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퉁치는 게 제일 쉽기 때문이다.

거리를 두고 싶은’, ‘이중적인’, ‘배타적인’, ‘부패한2020년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개신교의 이미지를 이렇게 표현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인간을 사랑하여 생명을 포기한 예수를 따른다는 사람들은 정작 왜 이렇게 됐을까? 세상의 불의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실체를 안 보이게 만들지만, 자신들의 불의에는 우리는 이렇지 않다는 둥, 일부일 뿐이라고 말하며 자기변명을 일삼았기 때문일까. 세상의 기본적인 상식조차 거스르면서 우리는 핍박받는 자들이라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서일까. 교회 안의 부조리와 반지성, 세습과 성범죄 등은 외면하며 교회 밖의 적을 상정하는 그들의 오만 때문일까. 그저 죄악의 기준이 금주, 금연, 혼전순결이라고 확신하며, 행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 정죄하고, 신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존재라고 낙인찍어버리는 그들의 거룩 때문일까. 아마도 그 모든 것 때문일 것이다.

나는 신이 무정하지 않다고, 아직 인간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비이성적이고 미련한 믿음이라고. 신은 이제 죽어 심연 속에 묻혀 버렸다고. 그럼에도 하루하루 고통을 삼키며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신은 마지막 도피처다. 세상 어디에도 천국이 존재하지 않기에, 천국에 대한 믿음은 사라질 수 없다. 성서에서는 신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 어디나 천국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개신교인이 국민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어떠할까? 그들의 절반이라도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갔다면, 꽤 나은 세상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신이 무정할지라도, 인간이 더 무정할 뿐이다.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조선대 신형철 교수가 쓴 한 칼럼의 마지막 말이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는 것.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 그것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어쩌면 많은 개신교인은 사랑한다는 것을, 상대방을 전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으로 이해할지 모른다.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타자를 대한다는 것이, 오만이자 폭력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말이다. 그저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곁을 내주고, 그 곁에 있으며,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삶, 그 삶 속에서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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