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내게 지금의 모습을 이야기해줬다면
아마 쉬이 믿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뭐든 될 줄 알았던 나였기에.
지금의 내게 10년 후의 모습을 얘기해준다면
똑같이 믿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나는 뭐든 되고 싶은 나이기에.
결국 떠난다.
교원대만 오면 되는 줄 알고 들어왔던 20의 희망은
교직에만 나가면 되는 28의 절망이 되어 나간다.
4년간 살았던 자취방의 마지막 밤이다.
좁디좁다 느꼈던 내 방이
이리 넓은 남의 방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니
괜시리 차오르는 눈물을 참았다.
눈물마저 흐르면 정말 쫓겨나는 것 같아
“정리할 것 많다. 정리할 것 많다.”며 애써 참아냈다.
슬펐지만 그 슬픔을 슬퍼할 수 없어 더욱 슬펐다.
4년간 ‘혹시나’라는 마음에 버리지 못했던 것들이
역시나 아니었기에 4시간도 안 되어 정리되는 모습에
나는 무엇을 이리도 버리지 못하고 모았는지 허망했다.
버려야지라고 마음만 먹고 버리지 못했던 편지들도
남겨볼까라는 마음이 생겼어도 모두 버리게 됐다.
남겼을 때도 버렸을 때도 이유는
똑같이 귀찮음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편지속의 추억보다는 편지속의 나를 보는 그리움에
그때는 버리지 못했고 지금은 버리게 됐다.
항상 남들보다 철이 들고 현실을 안다고 까불었지만
28이 되고서야 내 나이의 언령 때문인지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분명 짐으로 꽉차있어 답답했지만 아늑했던 내방이
똑같이 짐으로 꽉차있는데 왜 이리도 텅 비고 황량한지
달라진 것이라고는 박스밖에 없는데
박스 때문에 방이 달라지고 내가 달라진다.
별의별일이 다 있었다.
인생의 1/7을(대학 시절로 치면 1/3이겠구나),
한량스러웠지만 항상 치열했고
모든 걸 아는 줄 알았지만 아무것도 몰랐으며
그래서 진흙탕이었지만 그래서 가장 빛나던 시기였기에,
그렇기에 조금만 더 기억하고 곱씹고 싶었다.
과거의 것들을 조금 더 빨리 정리했다면
과거를 조금 더 기억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참 허망하다.
아직 부엌은 건들지도 못했지만
정말로 고마웠다 이십팔 내 인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