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알면 알수록 그 대상을 이해할 기회가 늘어나고, 이해할 기회가 늘어나면 그 대상은 비로소 마음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렇게 우리 마음속에 들어온 무언가는 살아가는 데에 큰 영향을 준다. 때로는 세상을 보는 중심이 되기도 하고,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힘이 되기도 하며, 즐거움이자 위안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이곳은 우리의 세계이기에, 우리는 이 세계를 더 아름답게 바라보려고 애쓴다. 우리의 세상을 마음에 담고 조금 더 사랑하기 위해, 이번에는 ‘예술’을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이번 호 교수의 서재에서는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은 중국어교육과 장현주 교수를 만나 보았다.
◇ 교수님께서 학창 시절 감명 깊게 읽으셨던 책은 무엇이며, 어떤 책인가요?
창작과 비평사에서 1997년에 나온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이라는 책입니다. 저는 20살 무렵에 이 책을 읽었어요. 저자 김석철 씨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술의 전당을 지은 건축가입니다. 우리나라 대규모 건축, 그러니까 예술적인 건축뿐만이 아니라 나라의 기반이 되는 여의도나 새만금 도시 설계를 하셨어요. 이 책은 건축부터 도시 설계까지, 이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저자가 세계의 유명한 건축물에 대해 수필처럼 써 두었어요.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사실 세계 각지에 유명한 건축물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고 있었어요. 책에는 서양, 이슬람, 동양 문명의 건축물에 관해 서술되어 있는데, 이 흐름을 따라가며 세계 각국에 유명한 건축물이 많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거죠. 건축가인 저자가 자신이 아는 지식을 가지고 수필을 쓰듯 기술해서 독자인 저에게 많은 정보를 준 것 그 자체도 굉장히 감동적이었죠. 또 단순히 우리가 매일 보는 아파트 같은 것만이 건축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고, 건축물을 접하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어요.
◇ 이 책이 교수님께 어떤 특별한 영향을 미쳤나요?
지식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이 책이 제게 의미가 있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이전에는 건축을 단순히 건물 그 자체로만 인식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책을 읽으며 건축이 예술의 일종임을 알게 됐고, 예술에 관심을 갖게 됐죠. 아버지께서 칸딘스키를 좋아하셔서 집에 늘 칸딘스키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 어렸을 때는 그 칸딘스키 그림을 보고서 ‘(모네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림도 아닌데 아빠는 왜 저런 그림을 방마다 걸어 두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칸딘스키를 알지도 못했고, 호감이 가는 그림도 아닌데다가, 왜 저런 기괴한 그림을 그리는지 생각할 정도로 까막눈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그러던 제가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을 읽고 건축을 통해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거예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건축이라는 게 단순히 구조물일 뿐만이 아니라 예술이자 미술의 한 영역임을 알게 되면서 예술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때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처럼 예술사를 다루는 책을 여럿 읽었는데요. 그러면서 인류의 대단한 지적, 문화적 유산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큰 감동을 느꼈죠. 이전까지는 현상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만을 보고 살아 왔다면 그때 이후로는 인간의 정신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됐어요.
◇ <김석철의 세계건축기행>이 교수님께 특별한 영향을 주었던 만큼 기억에 남는 내용도 여럿 있을 것 같은데요. 책의 내용 중 소개해 주고 싶으신 내용이 있으신가요?
이 책에 베이징 천단공원(天壇公園)이 소개되어 있어요. 책에 실린 또 다른 중국 건축물인 자금성은 알고 있었는데, 천단공원은 이 책에서 처음 접했어요. 천단공원은 자금성과 달리 사각형이 아니라 원으로 되어 있는 건축물이에요. 원통형 건물 위에 지붕이 2개가 있고 마치 버섯처럼 생긴 건축물인데, 저자는 그 모양이 하늘을 향해 기운이 뻗어 나가는 모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해요. 자금성은 사각형으로, 천단공원은 원형 모양으로 만들어진 것은 고대 중국인들의 사상과 관련이 있어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고 해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사고인데요. 그래서 고대 중국 사람들이 인간이 사는 자금성은 사각형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인 천단공원은 둥글게 만든 거죠. 천단공원은 하늘로 향하는 곳이니까요. 저자는 천단공원을 설명하면서 이 건축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하늘로 향하는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어요. 이 내용을 감명 깊게 읽고 나서 중국의 천단공원에 방문했을 때, 저자가 표현한 내용, 즉 그 기라고 하는 게 그대로 느껴지는 거예요. 산이 없이 사방이 광활하게 펼쳐진 북경에서 우뚝 선 원통형 건물, 방사형 지붕과 함께 서 있으면, 하늘이라고 일컬어지는 보이지 않는 힘의 위대함과 위엄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 평원에서 인간이 되게 작게 느껴지거든요.
또,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가볍게는 건축물이 원형일 수 있다는 것에도 놀랐고, 그리고 중요한 건 중국 건축물에 대해서 서양 건축물과 대등하게 두고 서술했다는 점이었어요. 20년 전, 그러니까 90년대에만 해도 서양 문화가 우월하다는 인식이 만연했거든요. 문학, 철학, 미술이나 음악 등 정말 모든 게 다요. 그래서 더 인상 깊었던 거죠. 이 점이 제가 중문학을 전공하고 중국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다양성, 평등성을 견지할 수 있는 데에 영향을 줬어요. 책에 보면 이슬람 건축물도 여럿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당시에도 그렇고, 사실은 지금까지도 이슬람 문명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알려지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렇게 생소한 이슬람 문명까지 다루고 있다는 게 놀라웠죠. 아름다움은 지역도, 문화·경제적 차이도, 사상도 관여하지 않으니까요. 예술품을 통해 새롭고 이국적인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고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또 한 번쯤 공부하게 되는 계기가 됐죠.
◇ 예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후, 교수님께서 얻으신 게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름다움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됐어요. 저는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만큼 예술에도 관심이 있긴 했었는데요. 이 관심이 이전에는 음악에만 국한되어 있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보는 것’의 아름다움도 알게 됐어요. 관심에서 그치지 않고 <서양 미술사>를 읽으면서 미술 작품 안에 여러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죠. 눈에 보이는 미술 작품이 제게 다가와서 작품이 표출하는 현상과 그 작품이 지나온 시간까지 보여 주는 경험을 했어요. 작품이 아무런 맥락 없이 돌출되어 나온 게 아니라 축적된 것들이 있기에 생성되는 것임을 알고 나니 예술에 대한 관점도 바뀌더라고요. 예술이라는 게 단지 눈에 보이는 작품 하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작품 안에 모든 인류의 물질적, 비물질적 문화를 녹여 내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이러한 예술을, 인간의 거대한 정신문화를 한 인간이 연구하고 분석한다는 것은 참 위대하고 또 인간을 겸손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연구하는 방법에 적용하게 되었어요. 저는 연구를 할 때 회화처럼 시각적인 것을 자료로 사용해서 문학을 함께 연구해요. 어떤 사회·문화사적 배경이 있는지, 이런 현상이 왜 나타났는지를 연구할 때 그림이나 어떠한 이미지에 근거하여 연구하는 것이 흥미롭고, 그렇게 했을 때 좀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성과를 얻기에는 훨씬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텍스트와 이미지를 함께 연구하면서 좀 더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미술에 대한 안목을 갖고 이해를 하게 된 게 제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고, 지금도 계속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그 시작이라는 데에서 제 인생에서 의미가 있는 거죠.
◇ 마지막으로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지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적인 욕구가 있고, 이 지적 욕구가 해소될 때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어요. 지적 즐거움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예술의 의미는 커요. 예술을 이해하게 되면 예술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그 예술에 녹아 있는 수많은 역사, 문화, 정신을 통해 인간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하게 되니까요. 예술의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거죠.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이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왜 이런 작품이 이런 모양이고, 이 양식과 이 양식은 어떻게 다르고 정도만 되어도 내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단순한 통 하나일지라도 이 통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맥락을 이해한다면 이 통이 단순한 통으로만 보이지는 않거든요. 그럼 어떤 느낌이 드냐면, 자신감이 생겨요. 무언가를 접했을 때 두려움이 없어지는 거죠. 어떤 낯선 것이 등장해도 무언가랑 비교할 수 있는 나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살면서 아름다움을 하나라도 더 알게 되면, 인생이 조금 더 즐거워져요. 저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 때문에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름답다’라는 걸 알게 되면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요. 길에 널브러진 돌멩이가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면 그 돌멩이가 나의 인생에서 의미가 생기고,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를 찾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음악도 좋고 미술 작품도 좋고 문학 작품도 좋고,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으며 언제나 내가 찾을 수 있는 나의 영혼의 친구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러면 인생에서 외롭고 고독한 순간에 분명 위로받을 수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