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영 희년함께 토지정의센터장
지난 대선에서 이대남, 이대녀 표심잡기 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여야 대선 후보들이 가장 공을 들인 세대가 청년세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의 상징적인 공약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라는 박근혜 후보의 기초연금 공약이었던 데 비해 2022년 대선은 ‘노인’은 뒤로 물러서고 ‘청년’이 전면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기성세대는 기득권, 청년세대는 피해자라는 세대 간 갈등 프레임이 사회 전반에 꽤나 퍼진 여파다. 사회에 먼저 진출한 기성세대가 좋은 일자리, 위치가 좋은 아파트 등을 이미 다 차지해서 뒤늦게 진입하는 청년들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정말 그럴까? <K를 생각한다>의 저자 임명묵은 대학을 간, 학번이 있는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와 대학을 가지 않은, 학번이 없는 56세대(50대, 60년대 출생)를 구별하며 기성세대 내의 계층을 구분하고 있다. <세습중산층 사회>를 쓴 조귀동 작가 역시 세대 간 격차보다 기성세대 내 부와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엘리트 계층들이 교육과 부동산을 통해 자녀들에게 세습하고 있음을 구체적인 데이터로 증명한다. <그런 세대는 없다>의 저자인 신진욱 교수 역시 세대 내 양극화와 계층 간 격차를 없애 버리는 ‘납작한 세대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 뭉뚱그린 세대론의 폐해, 세대 내 양극화 심화
세대 내 양극화를 뭉뚱그린 세대론 프레임 확산의 가장 큰 수혜자는 청년세대 내에서 부와 지위를 세습 받을 수 있는 청년들이 되고, 가장 큰 피해자는 주목받지 못하는 세대의 빈곤계층이 된다. 청년층의 양극화를 뭉뚱그린, 입체적이지 않은 세대론에서 파생된 대표적인 정책이 청년원가주택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공유지인 용산 정비창 부지와 강남 의료원 부지에 청년원가주택을 공급한다고 한다. 용산 정비창 부지에 지어지는 청년원가주택에 당첨되는 청년은 5년만 살면 최소 5억 이상의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인생에 한 번도 오기 힘든 행운이 필요하지만 청년원가주택에 있어 행운의 여신은 최소 자기자본 3억 이상의 돈을 가지고 있는 청년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최소 20%의 자기자본을 가진 청년이라야 청약이라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힘만으로 자기자본 3억을 조달할 수 있는 청년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돈 많은 부모찬스를 쓰는 청년이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뭉뚱그린 세대론 프레임 속에서 만들어진 정책은 결국 돈 많은 부모를 가진 청년들의 배만 불리게 된다.
◇ 사이비 세대론의 가장 큰 피해자
뭉뚱그린 세대론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까? 관심 받지 못하는 노년층 중 가난한 노인들일 가능성이 높다. 세계 10위 경제 규모와 한류, K-방역을 이끌며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대한민국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여전히 가장 높다. 세대별 빈곤율 역시 65세 이상 노인층이 가장 높다. 담론과 여론이 청년에 집중되어 있는 사이에 평생을 조국의 발전을 위해 수고했던 노인들이 비참하게 스러져 간다.
노년은 언젠가는 맞이할 모든 청년의 미래이기에 청년들과 상관없는 남의 일이 아니다. 인수위는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주는 기초연금을 30만 원에서 단계적으로 40만 원으로 올리겠다고 했지만,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상황 속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기에 일정과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노인빈곤율을 낮추기 위한 방안 역시 세대 내 격차에 대한 촘촘한 분석과 대안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용범 기획재정부 전 차관이 <격변과 균형>에서 제안한 방식이 설득력이 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OECD 평균에 비해 3배 가량 높은 이유는 국민연금 제도의 늦은 도입 때문이다. 75세 이상 노인들은 국민연금의 늦은 도입으로 인해 국민연금을 가입하지 않았거나 가입기간이 짧아 국민연금 혜택이 매우 약해 상당수가 빈곤노인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현재 75세 이상 고령층 중 소득 하위 70% 빈곤노인들을 대상으로 향후 10년간만 월 20만 원의 특별연금을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노인 계층 중 국민연금의 수혜를 받지 못하는 빈곤노인들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 특별연금을 준다면 노인빈곤율은 대폭 낮아질 것이다. 그리고 특정 기간 동안만 특정 노인에게만 특별 연금을 주는 것이기에 시간이 지나 특별연금을 받던 노인들이 돌아가시면 재정 부담이 다시 줄어들고, 그즈음이면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긴 노인들이 대다수라 노인빈곤율은 낮아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김용범 전 차관은 한정된 재원이라는 제약 속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노인빈곤율을 낮추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뭉뚱그려진 세대론의 사고체계 속에서는 나올 수 없는 방식이다. 가짜 뉴스와 담론이 횡횡하는 시대에서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구체적이고 촘촘한, 보기 드문 대안이다. 이런 대안이 우리 사회에 적용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시민들이 여론을 호도하고 생각을 흐리게 만드는, 의도가 엿보이는 가짜 프레임을 걸러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노년은 청년의 미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