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원대학교 국어교육전공 강수경
이 정도 교육 경력이라면 앞으로 학교에서 어떤 일을 맡더라도 못할 일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 즈음에 육아 휴직을 하게 되었다. 고작 현장을 일 년 벗어나 있었을 뿐인데 다시 돌아왔을 때의 학교는 낯설고도 낯선 곳이 되어 있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수업을 일 년 쉬었더니 맞춤법도 긴가민가하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2020년 2학기 복직을 하게 되었는데, 복직 일주일 전에 학교로부터 원래 예정되어 있던 비담임 자리가 아닌 담임 자리를 맡아 달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두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인문계고 담임을, 그것도 2학기부터 교체되어 들어가는 담임을 맡아야 한다니 난감함을 넘어서 온갖 걱정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어쩔 도리 없이 걱정을 가득 안고 출근한 2학기 첫날. 코로나 상황에서의 출결 업무 매뉴얼도 생소했고 오프라인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오가는 바뀐 현장 상황도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적어도 행정적인 업무만큼은 익숙하게 처리할 수 있겠거니 했으나, 학교를 떠나있는 동안 바뀌어 버린 NEIS 에듀파인 시스템 덕(?)에 당장 품의를 어디서 올려야 하는지를 몰라 허둥지둥하다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후배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참 이상하게도, 모든 게 힘들던 초임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서 일말의 의욕마저도 꺾이려고 할 때에 나를 붙잡아 줬던 것이 그 당시 담임 학급 제자들이었다. 감이 떨어졌다는 핑계로, 육아와 병행한다는 핑계로, 예전만큼 학급 경영에 힘을 쓰지 못했었는데 그런 나에게 오히려 “저희 반 담임 선생님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온 제자들. 담임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던 것이 솔직한 내 심정이었는데 그랬던 내 자신이 부끄러울 만큼 너무도 고맙고 예쁘게 다가와 준 제자들 덕에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교직 생활 중 가장 의욕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 일 년을 매일같이 보더라도 학급 구성원 개개인의 자질이나 진로 희망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교내 활동 설계를 하는 일은 담임으로서 가장 부담되고 어려운 일인데 나와 우리 반 제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도 부족했다. 심지어 코로나로 인해 격주 등교를 하던 때였다.
담임으로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모두 동원하여 관심 분야별 진로 프로젝트 활동과 학급 특색 활동들을 진행했다. 원격 수업 주간에는 프로젝트 모둠별 단톡방과 전화, 실시간 수업 플랫폼을 활용하여 비대면 상황이라는 장애물을 최대한 극복해 나갔다. 실장과 부실장에게는 보조 교사의 역할을 부여하여 프로젝트 모둠들과 학급회 각 조직들의 활동 진행도를 점검하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조력자로서 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급한 마음에 쉴 틈 없이 몰아쳐 나갔는데도 힘든 기색 없이 잘 따라와 준 제자들이 또한 고맙고 대견했다. 모든 일을 끝맺고 나서는 다 같이 박수를 치며 그간의 노고를 서로 치하하고 위로했다. 그 제자들이 올해 고3 수험생이 되었다. 모두가 원하는 곳으로 훨훨 날아오르기를 바랄 뿐이다.
대학을 다닐 때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나 나의 성향이 교직과 어울리는지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그것은 길고 긴 임용 준비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교직에 들어와서는 열정적인 동료 선생님들을 경외심을 갖고 바라보면서도 정작 스스로를 연마해 나가는 데는 소홀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학교라는 곳이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도 꽤 해 봤던 듯싶다.
그러나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역시 학교임을 이제는 안다. 일터에서 얻은 스트레스가 일터에서 치유가 되는 아이러니한 곳. 파견 생활이 끝나고 다시 돌아갈 때에는 더 이상 예전 같은 막막함을 겪지 않을 수 있기를, 앞으로의 2년이 내 부족함을 채우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