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현(수학교육·22) 학우
꽃이 흩날리는 풍경을 보았다. 네가 같이 걷자며 다가왔다. 연분홍 꽃잎이 계속해서 흩날렸다. 흩날리는 꽃잎 사이 네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말하기에, 부끄러웠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나머지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바람이 불어와 너의 볼에 있던 살갗 냄새를 옮겼다. 김새는 반응에 풀이 죽은 네가 느껴졌다. “산보는 무슨…….”라고 까슬까슬한 머리 뒤편을 만지며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어째 다리 뒀다 뭣에…….” 넌 삐진 듯 말 끝부분을 살짝 내리며 말하였다. 달큼한 침을 넘긴 뒤,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며 내민 손 위에 꽃잎이 내려앉았다. 여전히 내 고개는 너를 바라보지 못한 채이다. 따뜻한 너의 체온이 느껴지며 달큼하고 찐득한 침이 한껏 다시 넘어왔다.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니, 넌 두 눈 꼬옥 감고 다른 주먹 쥔 손을 저고리 위에 얹은 채로,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꽃잎들이 너와 나 사이의 공간으로 흩날리는 동안, 내 시야를 가리는 동안, 너의 얼굴이 보였다, 안 보였다 점멸(點滅)한다. 너의 발그레 상기된 얼굴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계속해서 가만히만 서 있자, 네가 감았던 두 눈을 뜨고 날 바라보았다. 너의 확장된 동공 속의 꽃잎, 나무, 구름, 하늘이 내 눈 안으로 들어오기를 반복한다. 너의 손을 잡아끌어 걷는다. 꽃잎이 연분홍빛으로 하늘을, 너와 함께 걷는 초련의 끝을 물들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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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몸이 안 좋습니다) 내가 …라도 됩니까? 정확히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심장이… 가슴이 …거리기만 하는 것이 …것만 같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매한가지….
언젠가의 대화가 불완전하게 생각났다. 곳곳에 납 냄새가 매캐하게 진동한다. 더운 쇠붙이 냄새가 난다.
물이 마시고 싶다. 얼굴을 시원한 어딘가로 들이박고 자고 싶다. 허청거리며 자리를 찾았다. 여기저기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절망적인 니힐리즘의 형상들이다. 앞에 있는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세어 본다. 하나아, 두울, 세엣...네엣...손가락이 세 개가 빈다.
“여보” 앞에 앉아있는 네 번째 손가락에게 말을 건다. 그는 멍하니 있다가 오랜만의 목소리에, 바닥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너희 일곱이었거든, 근데 지금은 넷이야.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 그는 날 해골처럼 쳐다볼 뿐이다. 하여튼 이들에게서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얘기가 안 통한다. 지겹다, 지겨워…. 혼자서 사람 노릇하기 힘들다. 한숨을 푹 내쉰다. 고개를 처억 치켜드니, 하늘은 파랗다. 흰 비늘구름이 떠다니고 있다. 사라진 세 개의 손가락이 그립다. ‘누구였지…’하면서도 그립다. 점차 눈이 감긴다. 바람이 분다. 기억이 나려고 한다. 순간의 기억들이 빠르게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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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파랗다. 꽃잎은 연분홍이다. 넌 발그레 눈을 뜬다.
아하, 그래. 마누라 자볼기 그립다고 너털대던 신 씨. 모친 은비녀 손에 쥐고 잠들 적, 젖가슴 다시 부여잡는 날을 기다리며 울던 김 군…. 나머지 하나가 누구더라…. 뭐더라…,
난 여전히 날개 달고 사라진 마지막 손가락을 생각해 본다. 퍼뜩, 눈을 뜬다. 대낮의 공중에서 잿빛 살별이 꼬리 늘리며 쏟아졌다. 공기를 찢어 놓는다. 시공간의 파편이 날아와 내 머리 위에 내린다. 애써 정리해 놓았던 상념의 보관함을 흩어 놓는다. 누구더라…. 뭐더라…. 이상하게 그립다. 너도 그립다. 너의 냄새가 콧날에 아슬아슬하게 걸터앉아 코끝을 간질였다.
하늘이 불규칙한 비명의 잿빛으로 물들었다. 네가 바라보는 하늘은 여전히 파랗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