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규 (윤리교육·22) 학우
달은, 허연 재가 다시 불타오르길 갈망하듯, 모든 것을 불태우는 시선을 갈망한다.
처음 그를 보았던 것은 한 작고 낡아빠진 소극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단역 배우였다. 배우 대다수처럼, 처음 보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며칠 벌어 한 달을 겨우 버티는 고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는 날은 거의 없었다.
왜 그런지 하도 궁금하여, 언젠가 그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리 힘든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 배우를 하나. 그럴 바엔 공장에 가서 기계나 돌리지.”
“낭만이 없군, 낭만이. 이래서 장사치들이란.”
“뭐라, 장사치? 자네, 지금 말 다 했나!”
“어이쿠, 무서워라! 그래, 미안하네. 내가 미안혀! 각설허고, 내가 배우를 하는 이유? 굳이 몇 번이고 대답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간단하지. 바로... 저 달에 가기 위해서네.”
배우답게 깜짝 놀라는 연기를 한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리 말했다. 순간, 이 친구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다. 달에 가기 위해 배우를 한다니, 대체 무슨 소리일까. 달에 가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해 과학자가 되어야지, 무슨 배우를 한다는 말인가?
“후후, 궁금하나?”
“당연히 궁금하네. 오늘 저녁은 내가 살 터이니, 그 값으로 이야기해주게나.”
그렇게 도착한 가까운 고깃집. 주변에는 소극장뿐만이 아니라 여러 공사장 들도 많았기에 저녁때쯤이 되면 언제나 여러 인간군상으로 넘쳐난다. 그래서 못 먹을 수도 있다는 걱정도 했는데, 우리는 다행히 구석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구먼. 오랜만에 배에 기름칠도 하고.”
“자, 그러면 어서 이야기해보게나.”
치익, 하며 나는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를 감미롭게 듣던 그. 내 재촉이 이어지자 헛기침을 큼큼, 하고 하더니, 갑자기 젠체하며 알 수 없는 말을 시작했다.
“이 사람 성질도 참. 알겠네. 배우의 한자가 무엇인지 아는가? 광대 俳에 넉넉할 優. 이 俳라는 글자는 사람 人에 아닐 非를 쓰지. 즉, 사람이 아니란 말일세.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이 아니면서도 넉넉하니, 보통 존재는 아니란 거여. 그리고, 이 광대라는 말도 웃기지. 음차이긴 하나, 넓을 廣에 큰 大라. 넓고도 큰 존재가 바로 광대라! 비록 예로부터 하찮다고 업신여겨졌으나, 광대가 뭇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이 무시할 정도가 아니었다는 말 아니겠나.”
그가 소주잔에 소주를 꼴꼴, 하고 부었다. 분명 달에 가고 싶은데 어째서 배우를 하고 있냐고 물었을 텐데, 그가 어째서 이러한 말을 했는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소주가 가득 찬 술잔을 단숨에 들이키곤 말을 이었다.
“나는 말이여, 저 달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커지고 싶네. 커지고 커져서, 다른 사람에게 이리 말하고 싶네. 우리는 비참하지 않았노라고.”
그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열망이 한껏 숨어있었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다 익은 고기를 내어주었다. 그러자 그는 금방이라도 고기가 없어질까 싶어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시뻘개진 얼굴로 술까지 거하게 걸치면서.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다음날, 교통사고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달에 닿을 정도로 커지겠다던 광오한 광대의 마지막치고는 너무나 하찮은 죽음.
달의 마력에 홀려 그곳에 닿고 싶었던 미친 어릿광대.
그는 달에 닿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