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은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되어 어느덧 시행 석 달째에 접어들었다. 입법과정에서부터 ‘적용 범위 제한’, ‘규정의 모호성’ 등의 다양한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시행 이후 그 우려들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 추락사 사건 현장(출처: 부산경찰청)
부산 추락사 사건 현장(출처: 부산경찰청)

◇ ‘50인 이상의 사업장’에만 적용? … 사각지대에 놓인 중소사업장 노동자들

지난 16일, 부산의 한 빌딩 철거 현장에서 철근 해체 작업을 하던 50대 일용직 노동자가 추락하여 사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건축물과 비계 사이에 추락방지망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등 명확한 안전상의 부주의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50인 미만의 사업장에 해당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처럼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의 사업장에 한하여 적용된다. 50인 미만의 사업장은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되며, 5인 미만의 사업장은 법 적용에서 배제된다. 이는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의 금전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이로 인한 법적 사각지대가 매우 넓어 법의 실효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달 15일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1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828명 중 80.9%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이는 올해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 공동대표 권영국 변호사의 ‘안전보건공단의 사망사고 속보 분석 자료’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1월 27일부터 2월 12일까지 발생한 13건의 중대산업재해 중 77%가 50인 미만의 기업에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중소사업장은 전체 산업재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음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울타리 밖에 있다. 부산노동권익센터 박현진 주임은 “소규모 사업장은 일용직 노동자 비율이 높고 안전조치가 미흡해 산재에 더욱 취약한데, 법 적용에서는 배제돼 안전을 외면하기 쉽다”라고 지적했다.

 

◇ 모호한 규정, 상이한 해석 …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

법률에서 쓰인 표현이 모호하여 규제 범위 및 책임소재 등이 불명확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법률에서 쓰인 ‘경영책임자 등’과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 등의 표현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작년 10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314개 기업에 대한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47.1%가 의무 준수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의무 내용이 불명확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법률 규제의 모호성은 판례가 쌓이며 제도가 보완될 때까지 산업현장에 지속적인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의 해석을 두고 국가 기관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이다. 지난 1월 대검찰청에서 발간한 ‘중대재해처벌법 벌칙 해설’에는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의 해설서와 많은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상시근로자의 범위 ▲해외 사업장의 법 적용 여부 ▲질병과 사망에 관한 해석 등에 대한 입장 차가 대표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기준이 되는 상시근로자의 범위가 다르다. 고용노동부는 파견근로자를 상시근로자에 포함했고, 검찰은 제외했다. 해외 사업장의 법 적용 여부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입장이다. 고용노동부는 해외에 설립된 별도 법인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지만, 검찰은 별도 법인 여부와 무관하게 국내 법인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한다면 해외 사업장에도 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명시된 24가지 직업성 질병 이외의 과로사나 출퇴근 재해 등에 대해서도 고용노동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로 분류했지만, 검찰은 중대산업재해에 포함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1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외치던 목소리가 청원으로 이어져 제정된 법이다. 누구도 생명을 위협받지 않는 일터에서 안전하게 노동할 수 있는 산업환경을 구축해내는 것이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목적이자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이다. 그러나 현재의 중대재해처벌법이 그 취지를 달성할 만큼의 충분한 실효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시행 초기인 지금, 현장의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의 제도적 허점을 돌아보고, 이를 보완해나가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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