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그리고 ‘가족’. 누군가는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끼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안감과 고통을 안겨주기도 한다. 특히, 친족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공포로 다가올 것이다. 어느 곳보다 편하고 안전해야 할 곳이 그렇지 못하다면, 그 공간에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지옥일 수밖에 없다. 한국 성폭력상담소의 ‘2020 상담통계’에 따르면, 친족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는 ▲유아(47.8%) ▲어린이(33.3%) ▲청소년(15.9) ▲성인(2.6%)으로, 주요 피해자는 유아를 비롯한 아동기·청소년기 아이들이다. 친족 외 인척에 의한 피해도 ▲유아(39.1%) ▲어린이(35.3%) ▲청소년(7.3%) ▲성인(1.7%)으로 유사하게 나타났다. 성인조차 견디기 버거울 상황을, 많은 아이가 마주하고 있다.
2021년 5월, 많은 사람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고 친족 성폭력 대응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청주에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해온 여중생이 같이 피해를 입은 친구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린 나이에 큰 신체적·정서적 피해를 겪은 학생들은 상담을 받고 경찰에도 알렸지만, 의붓아버지는 구속되지 않았다. 증거가 있었음에도 부실한 수사가 이루어졌고, 두 학생이 목숨을 끊은 뒤에야 의붓아버지가 구속되었다.
친족 성폭력은 가족관계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보다 피해를 인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피해자는 가해자에 느끼는 양가감정으로 인해 대응이 늦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법과 제도가 더욱 안전하게 피해자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가해자가 직계존속이라면 직접 고소 절차를 밟을 수 없다. 또한, 현행법상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장애인을 상대로 한 성폭행은 공소시효가 없지만, 미성년 피해자가 성인이 된 후에는 10년의 공소시효가 적용된다. 이는 친족 성폭력의 특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성폭력상담소의 ‘2019 상담통계’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피해 이후 상담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년 이상(55.2%) ▲10년 미만(13.8%) ▲5년 미만(4.6%)으로 나타났다. 피해자가 고심 끝에 가해자 처벌을 결심하고 사건조사를 요청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공소시효다.
또한, 친족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엄격하게 분리되기 힘들다. 오창 친족 성폭력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범죄를 인지했음에도 가해자와 피해자는 분리되지 않았다. 학생은 용기 내어 세상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외면당했다. 언론에서는 두 학생의 죽음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보도했지만, 이는 명백히 현 법과 제도에 기인한 ‘사회적 타살’이다. 두 학생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가 작동되었다면 안타까운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정책 곳곳에는 여전히 구멍이 뚫려있다. 친족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는 폐지되어야 하며, 직계존속을 고소할 수 없는 조항은 삭제되어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신속하게 분리되어야 하고, 피해자가 망설이거나 숨지 않고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때까지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다. 먼저 간 두 학생을 기리고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영혼의 살인이 이 땅에서 근절되고, 작은 관심으로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그 날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