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27일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일이었다. 이 법률은 경영 책임자에게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의무를 부과한 법률이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등 시행령에 여전히 허점이 많아 입법 취지가 흐려져 아쉽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 ‘법규 의무 준수 대상자 확대’, ‘처벌 강화’, ‘중대시민재해 규정’ … 법규 의무 준수 대상자 법인뿐이던 산업안전보건법과는 달라

중대재해처벌법은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에 대한 기준을 위한 법이라는 점에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 안전 보장을 위해 사업주와 노동자, 정부의 역할을 위주로 규정한 법이다.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 보장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의 처벌을 중심으로 하며, 처벌 수위를 강화하였다. 또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법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인과 별도로 사업주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중대재해를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분류한 것도 이 법의 특징이다. 중대산업재해는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중대산업재해는 산업재해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산업재해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는 중대산업재해로도 인정되지 않는다. 중대시민재해는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하는 재해를 제외하고, 다른 시민이 피해를 받았을 경우에만 적용된다.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가 중대시민재해에 해당한다.

 

◇ 노동자 죽음 이후에야 제정된 법임에도 …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등 한계 여전해

노동자 안전 보장을 외치는 목소리는 꾸준히 있었지만, 결국 수많은 노동법을 완성하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2016년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 스크린 도어 수리 업무를 하던 노동자가 전동열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듬해 4월, 고 노희찬 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새 법안 제정 대신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만이 진행되었다. 2020년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가 발생해 현장에 있던 38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에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 대한 국민 청원 동의자가 10만 명에 달했고, 21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발의돼 2021년 1월 통과되었다.

시행까지의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본회의 의결 과정에서 해당 법률의 원안이 상당 부분 수정되었다. 일정 규모 이하의 사업장을 제외해 법적 사각지대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의 사업장의 경우에만 적용된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부터 적용을 받는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송두한 국가인권위원장은 법률 시행 하루 전인 1월 26일, “하루 평균 5.6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할 때 법 적용에 예외를 두거나 미뤄서는 안 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기업들은 여전히 노동자 안전 보장보다 위험 요소 감추기에 급급하다. 중대재해처벌법 ‘1호’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 작업장 가동을 중지하거나 공사를 멈추는 등 기업들의 꼼수가 있었으나 이를 저지할 방법은 없었다. 법률 시행 이후에도 경영자 단체들은 ‘법안이 모호하다’, ‘처벌보다는 예방이 중요하다’는 등의 의견을 밝히며 법률 개악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는 입장문을 발표해 ▲중대재해처벌법 개악과 무력화 시도 중단 ▲엄정한 법 집행으로 실질적 처벌 강화 ▲5인 미만 사업장 예외 조항 삭제 및 법령 전면 적용을 주장했다.

 

2월 11일, 삼표산업 이종신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 혐의로 최초 입건되었다. 삼표산업뿐만이 아니다. 판교 건물 신축 공사 현장 사고, 여천 NCC공장 폭발 등 전국에서 잇따른 대형 사고가 연이어 발생해 법령 적용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름뿐만이 아닌 실질적 울타리가 되려면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개정하고, 법 적용과 처벌이 적합하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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