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찬 (화학교육·21) 학우
세 달 전 즈음 ‘일 년’의 시간을 주제로 글을 써 내려간 적이 있었다. 내가 느낀 사계절을 끄적인 뒤 ‘시간의 골짜기’라는 나름의 제목도 지어보았다.
쌉싸름하고도 달콤한 싱그러움이 온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누군가에겐 희망차고, 누군가에겐 절망적인 새로운 시작의 소리가 자신의 자태를 뽐냈다. '봄'은 우리를 미궁 속으로 이끌었다.
짧은 미궁에서 빠져 나오자 마음속 희망들을 간지럽히듯 깃발이 팔락거리며 모두를 유혹했다. 희망을 가진 웃음을 비웃음으로 바꾸는 총성이 하늘에서 울렸다. 물방울이 자신의 영역을 넓히고, 다른 것들은 움츠러들었다. '여름'은 우리에게 쉬어 가라고 속삭였다.
한풀 꺾인 우리를 부추기듯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어떤 이는 나태함을 벗어 던지고, 또 다른 이는 잠재력을 뿜어댔다. 한없이 약해 보이던 고요함이 시작의 소리를 잠재우고 총성을 잡아먹었다. '가을'은 우리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정신을 차리자 다정했던 바람이 냉혹하게 이정표를 부러뜨렸다. 도착지는 보였지만, 길은 삐뚤었다. 쌓아 왔던 감정들이 포화되어 응결되는 듯했다. 휘몰아치는 것은 눈보라뿐만이 아니었다. 절망이 한층 더 가까워졌을 때, '겨울'은 우리에게 마지막을 노래했다.
'일 년'이라는 지독한 시간의 골짜기를 돌아보는 나에게 저 멀리서 시작의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교원대에서 보내는 첫해의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가까이서 느껴 보기도, 멀리서 지켜보기도 한 교원대의 사계절을 한 번 글로 남기려고 한다.
교원대의 봄은 따듯했다. 새로운 이들을 맞이하는 계절임을 봄도 아는 듯했다. 캠퍼스 곳곳에는 풋풋함과 어색함이 뿜어져 나왔다. 뭐가 그리 신기하다고, 학교 잠바에 새겨진 교원대 마크와 색색의 과 잠바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반짝였다. 자신의 오랜 터전을 떠나고 새로운 곳에 남겨진 이들은 서서히 편안함을 찾고 있었다. 봄이라는 걸 티라도 내듯 꽃과 같이 아름다운 것들이 마구 피어났다.
교원대의 여름은 들떴다. 웃음에서 묻어 나오는 어색함은 익숙함으로 바뀌어 갔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떠드는 그들의 모습, 그것은 마냥 귀여운 허세였다. 익숙함은 줄곧 편안함으로 이어지며, 함께 보낸 시간이 짧다는 것을 망각하게 했다. 이 망각은 또 다른 이해를 불렀고, 그렇게 서로는 더욱 익숙해졌다. 서운함과 고마움이 뒤섞여 떠오를 때쯤에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기다림이 덮쳐 왔다. 여름은 우리를 들뜨게도 했지만, 또 진정시키곤 했다.
교원대의 가을은 황홀했다. 봄과 여름, 그리고 기다림을 견딘 그들은 점점 무르익었다. 더 이상 봄처럼 따듯하지 않으며, 여름처럼 들뜨지도 않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잔잔함이 맴돌았다. 그리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잎처럼, 지나온 시간을 아름답게 어쩌면 후회하며 떠나보냈지만 그렇게 남겨진 추억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견딜 양분과 같았다. 가을의 잔잔함은 또 다른 시작의 발판이었을지도 모른다.
교원대의 겨울은 단호하다. 남겨진 추억을 겹겹이 감싸기 위한 노력을 시험하는 듯 또 바람이 분다.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깨닫는 것은 슬프기에 애써 부정하는 듯한 이들의 애매한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차가운 줄만 알았던 겨울의 단호함이 의외로 따듯한 것은 황홀했던 올해를 정리하라는 뜻인지 아니면 내년을 차분히 준비하라는 뜻일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 따듯함은 아쉬움을 유발하고 있다.
이렇게 일 년이라는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시간 동안 느낀 교원대의 모든 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아름다웠다. 봄에는 신입생들의 어리숙함과 그 누구보다 따듯한 선배들의 온기가 어우러졌으며, 여름에는 역설적이게도 서로의 마음은 가까워졌지만, 거리는 다시 멀어지곤 했다. 가을에는 모두 꽤 성숙해졌고, 겨울은 여전히 우리의 시간을 앗아감을 준비한다. 이렇게 많은 아름다움을, 가족 같은 동기들을, 친구 같은 선배들을, 꿈만 같은 추억들을 가져갈 수 있음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 앞으로도 감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