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산다는 것은 그저 버텨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그런 순간에 우리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까. 여기 이와 같은 질문들을 품고 바다로 나아가는 둘이 있다. ‘긴긴밤을 펼쳐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다른 것은 별문제 없는 것, 서로 도우며 같이 살아가는 것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살았지만, 다른 코끼리들처럼 긴 코가 없었다. 그는 그곳의 유일한 코뿔소였기 때문이다. 코끼리들은 거의 모든 일을 코로 다 했다. 그래서 사실상 노든이 다른 코끼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다른 코끼리들은 노든을 도우며 함께 살아간다. 이는 그들이 따르는 순리 때문이다. ‘다른 것은 별문제 없는 것’, ‘서로 도우며 같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순리를 말이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눈이 보이는 코끼리와 살을 맞대고 걸으면 되고, 다리가 불편하면 다리가 튼튼한 코끼리에게 기대서 걸으면 돼. 같이 있으면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야. 코가 자라지 않는 것도 별문제는 아니지. 코가 긴 코끼리는 많으니까. 우리 옆에 있으면 돼. 그게 순리야.

 

추억을 버팀목으로 삼아

노든은 왜 자신에게 뿔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코끼리 고아원 밖의 다른 코뿔소를 만나고 싶었다. 코끼리가 아닌 코뿔소가 되기 위해 고아원을 떠난 노든, 훌륭한 코뿔소를 만났다. 그는 그녀에게 자연에서의 삶을 배웠고, 그녀와 가족이 되었다. 딸이 태어났다. 셋이 함께한 날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기에, ‘노든은 더 바랄 게 없었다. 그의 생에서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빗발치는 총알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갔고, 잠들지 못하는 긴긴밤만이 노든에게 남았다.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노든은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딸과 아내 덕분에 살아남은 그는, 그들 때문이라도 살아야 했다. 악몽을 꿀까 두려운 날에는 아내 그리고 딸과의 기분 좋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 또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노든은 그렇게 자기 몫의 삶을 살아냈다. 먼저 떠나간 이들을 따라가고 싶어도, 추억을 버팀목으로 삼아 그들의 몫까지 꿋꿋이 살았다.

파란 지평선

알에서 깨어난 펭귄에게 노든은 길잡이별과도 같았다. 낮에는 알 바깥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쳤고, 밤에는 악몽을 꾸지 않게 옛날을 말해 주었다. 그렇게 둘은 매일 조금씩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어느 날 펭귄은 자신이 왜 바다에 가야 하는지 노든에게 묻는다. 그러자 노든은 말한다. 바다는 네가 온전한 너 자신일 수 있는 공간이라고.

그래서 자신의 전부였던 노든이 더는 자신의 곁에 있지 못한다 해도, 펭귄은 혼자 긴긴밤을 넘어야만 했다.

바다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미끄러지고, 절벽에서 떨어지고, 멍이 들었다. 그래도 펭귄은 멈추지 않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밤 끝에, 비로소 파란 지평선이 펼쳐졌다. 바다였다.

사진/긴긴밤 中
사진/긴긴밤 中

 

두렵고 두려운 긴긴밤이 있다. 어느 날 그 끝을 짐작할 수도 없이 거대한 어둠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코뿔소와 펭귄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떠나간 이들이 남긴 추억으로 오늘을 견디고 내일로 나아갔던 그 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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