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거듭 마주치게 되는 책이 있다. 같은 책이더라도, 그 책을 새롭게 만날 때마다 감상은 매번 달라진다. 읽는 이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느낌과 그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음악교육과 손민정 교수에게도 그런 책이 있다. 바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다. 『월든』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일정 속에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내는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여유를 갖게 하는 책이다. 손민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삶의 본질과 인생을 견디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대학 생활을 넘어 인생 전반에 깊이 영향을 끼친 『월든』, 손민정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 보자.
◇ 교수님께서 감명 깊게 읽으신 책은 무엇인가요?
제가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월든』이라는 책입니다. 부제목으로는 ‘Life in the Woods(숲 속의 생활)’입니다. 1854년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수필입니다. 작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사상가이자 철학자이자 정치가예요. 특히 기존에 있던 많은 악법에 대해서 대항하는 정치적 활동을 하신 분이고요.
책은 작가가 1854년에 ‘월든’이라는 호숫가에서 2년 동안 칩거 생활을 했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요. 지금으로부터 약 170년 전의 미국 동부 산속에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산속에서 혼자 자그마한 오두막을 직접 짓고 살아가며,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시기에 관한 이야기예요. ‘현실 도피한 것이 아니냐’라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작가는 기본적으로 삶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했던 철학자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이런 일이 작가의 직업이었던 거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작가는 정말 어마어마한 노동을 했어요. 그냥 놀거나 편안히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을 통해 독립적으로 살아갔고, 그 과정이 이 책에서 드러나죠.
◇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작가가 책에서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내가 말하는 내용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읽어라’라고 했는데,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작가가 나를 통제하려는 게 아니고, 가르치려는 게 아니었어요. 나에게 절대적인 자유를 주면서도,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며 설득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를 통제하려고 하기 시작하면 효과적이지 못한 교육이 될 수도 있고, 원하는 교육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진리를 전달하고 설득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 책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고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책으로 여러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 이 책이 교수님께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책을 읽었을 때, 서양 음악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서양 음악에서는 항상 옳고 그름에 관한 규칙이 있어요. 그런 규칙을 공부하던 중에 『월든』을 접했어요. 책 속에는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소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작가는 산에서 혼자 살아가므로 깡통 소리나 고양이 소리와 같이 평소에는 잘 못 듣는 숲의 다양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작가는 그 소리에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했어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소리를 책에 쓴 거죠. 이 대목을 읽으면서 세상에 있는 소리를 중요한 소리와 중요하지 않은 소리로 구분하는 것은 시야가 제한적이고 너무 좁은 태도였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이후 저는 유럽 음악뿐이 아닌 다양한 다문화 음악이나 자연의 소리로 관점을 넓힐 수 있었어요. 대학교 1, 2학년 때 저는 ‘아름다운 소리는 이런 것이고 음악은 이런 것이다’라며 소리의 우열을 구분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소리 중 중요하지 않은 소리가 없다는 걸 느낀 거죠. 조금 더 나아가서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 자체도 중요하지 않은 존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항상 삶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려고 해요.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한다고 인생에 실패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소리가 없듯이 말이에요. 이 책이 제게 영향을 준 부분은 딱 그 부분이었어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규제나 통제, 고정관념과 같은 다양한 잣대가 내 내면에서 나온 것이 아닌데도 저는 세상의 틀에 박힌 생각을 해 왔어요.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고정관념을 깰 수 있게 됐어요. 더 나아가 내 인생의 기준은 나지,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고요.
◇ 교수님께서 이 책에서 읽어 낸 소로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소로의 철학은 ‘물질적인 데에서 행복을 찾으면 안 되고, 본질이라는 것은 그 건너편에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을 읽어 보시면 ‘너무 사소한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언뜻 보면 그럴 수 있는데 사실 이 책을 읽으면 결국에는 ‘맞아, 내 삶에는 이렇게 소중한 것이 많아. 내 삶의 주인공은 나야, 다른 사람의 시선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와 같은 쪽으로 사고가 흐르게 돼요. 소로가 살았던 월든 호수에 가면 팻말이 있어요. 이 팻말에 적힌 말이 소로가 했던 말 중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팻말에는 ‘내가 숲으로 간 것은 삶을 잘 살아보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소로가 숲에 간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닌 거예요. 정말 인생이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 갔던 거죠. 그리고 그 문구의 마지막에는 ‘내가 죽었을 때, 내가 살아있지 않다고 느끼고 싶지 않았다’라는 거예요. 진짜로 삶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하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고자 했던 사람인 거죠.
◇ 교수님께서 이 책을 여러 번 읽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의 매력을 설명해 주세요.
물론 이 책을 처음 읽을 당시에 이 모든 깨달음을 얻었냐고 하면 그건 사실 아니에요. 그런데 『월든』이라는 책을 살면서 정말 많이 접하게 됐어요. 학생들 독후감을 심사할 때 다시 이 책을 꺼내 읽게 되고, 제가 연구를 하면서도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죠. 그러면서 이 책은 학부 때뿐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제 삶에 영향을 주었어요. 그래서 아마 지금 제가 여러분께 말하는 것이 제가 학부 때 느꼈던 감정이랑 다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만큼 이 책이 다양한 뜻을 품고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독립성이나 주체적인 생각이 중요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소로의 이 책은 정말 솔직한 책인데, 이 책을 읽으며 꼭 남들이 가라는 길만을 가야 하는 건 아니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죠. 나답게 사는 나와 고독을 잘 즐길 수 있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학생들이 이 책을 읽어보면 재미와 마음의 평화를 다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결국은 ‘교육자’라는 관점뿐만 아니라 ‘인생’이라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금 더 열린 사고를 하자는 거예요. 그리고 교육자라는 것도 부모가 교육자로 불릴 수도 있듯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누군가에게는 교육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누구나 교육자가 된다면, 모두에게는 각자 어떤 교육 철학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결국 그 교육 철학은 미래를 위한 생각인 거예요. 미래를 살고 있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미래를 위한 이야기를 해 줘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있어요. 함께 고민하고, 또 조금 더 열린 사고로 세상을 살아가는 거예요. 저는 사실 우리학교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고, 그 뛰어난 힘에 대해서는 늘 감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나 학생들이나 이 한 가지는 꼭 필요해요. 조금 더 포용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와 과거를 살았을 뿐이지, 미래는 모르는 입장이에요. 그렇다면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겸손해야 하는 일이에요. 함께 포용하고 산다면 그 부담감이나 외로움이 좀 덜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월든』이라는 책을 추천하는 이유도 그래요. 이 책을 읽어 보면 우리가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게 되거든요. 이 책이 열린 마음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