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민 (지리교육·20) 학우

단편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제목 그대로의 질문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은 시초지(지구) 바깥의 어느 한 마을이다. 마을의 사람들은 18살이 되면 성년식의 일종으로 시초지로 순례를 떠난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면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어른의 취급을 받지만, 어떤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왜 마을을 떠난 어떤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을까? 이 질문의 대답을 얻기 위해 데이지는 순례자들의 기록을 찾는다.

이 마을의 비밀은 다음과 같다. 마을의 설립자 릴리는 유전적으로 결함이 없는 인간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얼굴에 큰 흉터가 있던 릴리는 결함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신인류를 만들어 내지만 정작 결함 없는 신인류는 모든 것을 누리고 결함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변두리로 밀려나고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양극화가 일어난다. 릴리는 그 기술로 올리브라는 자신의 아이를 만들지만, 오류로 인해 그 아이 역시 자신과 동일한 결함을 가지게 된다. 릴리는 결국 그 아이를 폐기할 수 없었기에, 질병이나 장애가 있어도 불행하지 않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지구를 떠나 한 마을을 세운다.

그렇다면 왜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는 걸까. 그들은 왜 행복한 마을을 떠나 고통과 괴로움이 새겨진 지구에 머무르는 걸까. 마을은 아름답지만, 서로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낭만적 감정도 성애도 느끼지 못한다. 사랑은 결국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결함과 고통을 끌어안을 때, 타자에 대한 사랑이 비로소 완성된다. 지구는 그런 곳이다. 불합리와 차별로 얼룩져 있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을 느끼고 용기가 되어줄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랑에 빠진 그들은 마을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수십 년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 질서는 파편화된 개인을 만들어 냈고, 전염병은 안온한 우리의 일상을 갈라놓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데,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사람을 위해 싸워 주는 건 무리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저 나만의 세계에서 적당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세대의 가장 큰 목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함을 가진 존재이기에,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쁘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곁에 싸우며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은 이야기한다. 더 어둡고 암울한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극단주의가 팽배하고 기후 위기가 현실이 된 지금, 세계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고, 나 자신의 앞날 또한 불확실하다. 하지만 당신의 세계를 위해 싸워 줄 단 한 사람, 혹은 당신의 삶을 던져 사랑할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 시절 또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안전한 것처럼 보였던 마을을 떠나 우리는 순례를 떠나게 된다. 순례의 길에서 우리는 아픔을 만나고, 고통을 겪고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당신은 다시 돌아가겠는가, 아니면 남겠는가.

소설의 끝에서 데이지는 친구 소피에게 한 마디를 남기고 편지를 마무리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이 행복할 거야.” 그렇게 데이지는 마을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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