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작년 한 해 나는 교실에서 코로나19와 싸우느라 바빴다. 9년 간 쉼 없이 교실에서 지내 왔음에도, 처음 해 보는 방역 생활로 인해 교실 생활에 새로운 적응이 필요했다. 교사인 내가 그렇듯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과 떠들고 놀기 위해 학교에 오는 우리 반 열두 살 배기들. 그들에게 칸칸이 막힌 네모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규칙은 규칙을 넘어 ‘벌칙’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는 처음 느껴 보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다. 시끌벅적한 쉬는 시간은 없지만, 조곤조곤 나누는 대화가 늘었다. 우리는 떠들썩하게 수다를 떨 수는 없었지만, 서로 안부를 나누고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가 전보다 많아졌다.
나의 교단 경력을 통틀어, 작년 한 해 나는 학생과 가장 많은 통화 이력을 쌓았다, 학생들과 매일 아침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해, 수시로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내향형에 일대일 대화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얼마나 큰 즐거움이었는지 모른다.
보통 교실에서 이뤄지는 수업은 교사 대 학생 전체, 즉 일대다(多)의 소통 형태를 갖는다. 학생 전체를 이끌어가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 안에서 소외되는 한두 명이 꼭 있다. 목소리 한 번 듣기 어려운 학생들이다. 나는 말이 없고 잘 끼지 않는 그런 학생들에게 유독 시선이 가고,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거리두기로 인해 학생과의 개별 소통 기회가 잦아지면서, 내가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 아이들, 시끌벅적한 교실 틈에서 소외되는 아이들 목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전화나 문자, 일대일 소통에서는 참여자 모두가 화자이기 때문이다. 전화로 소통할 때 또 다른 장점은 다른 이의 눈과 귀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잘못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목소리를 낮춰 말하지 않아도 된다. 조용히 남들 모르게 말해야 하는 가정 사정도, 전화나 메시지로는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교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부담 없이 목소리로만 소통할 때, 조금 더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학생 전체와의 소통에 익숙하던 나에게 학생들과 매일 통화하고, 친한 친구보다 더 자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경험은 무척 새로웠다. 그리고 매우 만족스러웠다. 교실 밖에서도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고, 심지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니. 수업 시간에는 바빠서 간단하게 했던 칭찬도 하트 가득 담아서, 웃음 이모티콘 가득 넣어서 다시 한 번 보낼 수 있다.
거리두기 이전에는 상상하지 않았고, 솔직히는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하루 종일을 같이 보내고 매일 보는 학생들에게 메시지로 안부를 묻고 전화하는 일은 어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거리두기 덕분에, 학생들과 교실 밖에서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재미를 알았다.
내년에 교원대 대학원 파견 생활을 마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면, 분명 거리두기 방침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모습에 가까워져 있으리라 예상한다. 다시 시끌벅적한 교실, 수다가 끊이지 않는 교실에서 정신없음과 행복함 사이를 오갈 것이다. 굳이 아침마다 학생들에게 전화하지 않아도, 굳이 전화나 메시지로 안부를 주고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일부러,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고 싶다.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말이다.
작년에 느낀 소통의 즐거움을 지키고 싶다. 얼굴을 마주하는 소통, 교실에서 학생 전체와의 교류 모두 소중하지만, 학생을 집단으로서가 아니라 단독으로 마주하는 경험은 새로운 느낌을 준다. 현장에 돌아가 학생들 하나하나에게 귀 쫑긋 세우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겠다고, 새삼스레 다짐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