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126 김민희 (초등미술교육과)

교단에서 아이들과 1년을 아웅다웅 보내고, 2학기 마지막 날 교실에 홀로 앉아 빈 교실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마음을 아시나요?”

서툴고 열정적인 신규 시절을 보낸 후, 교직 5년 차 무렵, 그 무렵엔 빈 교실을 바라보는 마음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1년 내내 친구들과 갈등을 빚으며 속을 썩여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학생도,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듬뿍 쏟았던 학생도, 학습 부진을 이겨내려 매일 한 시간씩 함께 공부하던 학생도 1년이 지나면 내 교실을 벗어나게 된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학생들을 향한 나의 노력과 정성도 그저 과거의 기억으로 모조리 사라지는 것 같아 허무함과 괴로움을 느끼곤 했다.

6학년 담임을 맡던 시절의 어느 퇴근길, 그날도 나는 학생들과 북적북적한 하루를 보낸 후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날은 저학년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두 여학생의 교우관계 고민을 실컷 들어주고 오는 길이었다. 고학년 여학생들의 복잡하고도 예민한 마음에 혹시나 상처를 입힐까, 표정 하나 말투 하나 조심하며 학생들의 마음을 살피면서 상담을 진행했기에 내 마음 역시 많이 지친 날이었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나는 막연한 후회감을 느꼈다.

어차피 1년만 지나도 이런 일은 기억하지도 못할 텐데.’

오후 내내 학생들을 상담하느라 밀려 있던 업무와 수업 준비를 하지 못하고 퇴근한 것에 대한 대상 없는 원망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냥 싸우지 말라며 한마디하고 하교시킬 걸 그랬어.’

나는 무심코 나의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우습게도 나 역시도 6학년 시절의 일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일 하나는 글짓기 대회 연습을 위해 처음으로 글을 쓴 날, 내가 쓴 글을 보고 웃어 주시던 담임선생님의 미소였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선생님의 미소가 오랫동안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때의 기억 덕분일까? 지금의 나는 글 쓰는 것을 참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오로지 그때의 기억 덕분이라기엔 이 기억은 방금 겨우 생각해 낸 너무나 희미한 추억 중 하나였다.

물론, 담임선생님의 미소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에 확실한 인과관계가 성립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내 글을 읽고 무뚝뚝한 면박을 주셨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는 지금처럼 글쓰기를 좋아하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 면박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나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분명 그때 선생님께서 보여 주셨던 작은 미소 하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작은 조각으로 내 삶을 채워 주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이렇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내 인생의 빅데이터 속에 여태까지 만나 왔던 선생님들의 노력과 정성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를 알 수 없지만 한 조각이라도 없으면 안 되는, 기계의 이름 없는 부품들처럼 말이다. 학생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려는 나의 성격, 학생들의 삶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의 교직관 등, 나를 이루는 인생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은 분명 선생님들의 사랑으로부터 만들어진 작은 이정표들로 인해 결정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날 학생들을 위해 애썼던 나의 고생스러움이 훨훨 씻겨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학생의 삶 속에 나의 관심과 사랑이 하나의 작은 이정표로 남는다면, 정말 아무 보답도 필요 없었다.

가끔, 빈 교실이 허무할 때면, 출처를 남기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묵묵히 나를 만들어 주신 수많은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한다. 그 기억나지 않는 노력과 사랑들이 모여 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드셨듯이, 나 역시 출처를 남기지 않는 조용하고 따뜻한 사랑을 나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려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교육 현장에서 묵묵히 출처 없는 사랑을 나눠 주고 계시는 모든 선생님에게 많은 격려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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