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6535 박지영 (수학교육과)
길고 고된 임용 준비기간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 상상해보는 것’이었다. 담임을 맡게 되면 아이들 생일마다 생일파티를 해 줘야지. 종업식이 끝나면 하교 후 모여서 다 같이 삼겹살을 먹으러 가야지. 칭찬을 많이 해주는 다정한 선생님이 돼야지. 아침에는 항상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맞아야지. 서툴러서 실수하면 꼭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멋진 선생님이 돼야지. 그런 상상을 하며 공부할 힘을 낼 수 있었고 덕분에 임용 준비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난 눈앞의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뒷전으로 미루는 신규교사가 되었다. 아침에 웃으며 아이들을 맞아주기는커녕 수업 준비를 하느라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었고, 틈만 나면 자리에 앉아 공문처리를 했다. 담임의 업무 중 가장 중요한 학생상담도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뤘다. 학교 일이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을 그만두는 상상을 했지만 몇 년간의 임용 준비기간이 아깝게 느껴져서 꾸역꾸역 출근했다. 그러던 도중 나의 태도를 바꾸어 준 한 학생 D를 만났다.
D는 교과 선생님들이 인정하는 우리 반 최고의 장난꾸러기이자 문제아였다. 생활기록부에 적을 장래 희망과 특기를 생각해오라는 가정통신문에 D는 장래 희망은 ‘미국 대통령’이며, 특기는 ‘선생님한테 반항하기’라고 적어왔다. 지금이라면 D를 개인적으로 불러 이야기를 했겠지만, 노련하지 못했던 신규교사는 종례 시간에 D를 일으켜 세운 후 왜 이렇게 썼는지 물어봤다. 영웅심리가 발동한 D는 “잘하는 거 쓰래서 반항이라고 썼고, 하고 싶은 거 쓰래서 그렇게 쓴 건데요. 문제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름의 논리가 있는 D의 대답에 말문이 막힌 나는 일단 종례 후 남으라고 이야기했고, 1시간을 대화한 끝에 장래 희망은 ‘대통령’, 특기는 ‘태권도’라고 쓰는 것에 합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D는 친구들 앞에서 세 보이고 싶어서 반항한 것인데 난 그의 본심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학급 친구들 앞에서 예의 없음을 꾸짖었으니 그는 더 약해 보였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또 반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때의 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기엔 너무 미숙했고 그래서 우리는 매번 부딪혔다. D와 함께한 고된 1학기는 나에게 여름방학의 존재 이유를 일깨워 주었다. 만약 여름방학이 없었으면 교사들이 다 화병으로 제 명에 못 살 것이란 생각도 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이 되니 잘 쉰 덕인지 그 원수 같던 아이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다들 별일 없었는지, 키는 많이 컸는지 궁금해서 2학기 개학식 날은 평소보다 집을 일찍 나섰다.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괜히 기분이 좋아 웃으며 교문을 들어서는데 D가 바나나 한 개를 들고 계단에 쪼그려 앉아있다. 그래서 "방학 잘 보냈니?" 했더니, "이거 쌤 줄려고요." 한다. "아침 못 먹어서 가져온 거 아니야?" 했더니, "2학기에는 반항 안 하려고요. 쌤 바나나 좋아하는 거 같아서 가져왔어요." 한다. 얘가 방학 동안 뭘 잘못 먹었나 싶었지만 무심한 척 "고마워!"하고 바나나를 받았다.
그 이후 D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떠드는 친구들은 조용히 타이르고, 선생님께 예의 없이 행동하는 친구들에겐 따끔하게 한마디를 했다. ‘사람이 이렇게 바뀌어도 되나?’ 생각이 들 즈음 D의 어머니께서 찾아오셨다. 상담실에 오시자마자 엉엉 우시면서 하는 말씀이, 일이 바빠 신경을 못 썼더니 D가 사춘기가 심하게 와서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개학식 전날 아들이 우리(D의 부모님)를 부르더니 1학기에는 사춘기가 와서 엄마, 아빠랑 담임선생님을 많이 괴롭혔는데 이제 사춘기가 끝난 것 같으니 잘해보겠다고 했단다. 특히 선생님을 많이 괴롭혔는데 자기가 사과하긴 민망하니, 엄마가 음료수를 사서 선생님께 드리고 대신 사과해달라고 소중한 용돈 만 원을 내밀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1학기 내내 D를 대하는 일이 힘들어서 출근하기 싫다고 울고불고했던 나의 미숙함이 부끄러워졌었다. 그리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짐을 부모님과 선생님 앞에서 선언하는 모습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자기 말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배워야겠다고도 생각했다. D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정년까지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한다면 8할은 이 아이의 덕일 것이다.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은 날이면 D를 떠올리고 마음을 고쳐잡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