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6616 황원호 (수학영재교육전공)
학교신문에 글을 기고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50보 가자했을 때 101보 함께 가주자.’라는 것이 사람을 대하는 나의 기본 가치관이기에 흔쾌히 수락했으나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가장 토속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누군가의 얘기처럼 현직에서 내가 느꼈던 소박한 개인의 경험과 소견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생각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학교의 아침풍경에 대한 나의 짤막한 단상을 얘기해보려 한다.
신규교사였던 2003년도에 경기도 교육청 소속 고등학교로 부임했다. 그 학교에서는 아침 7시 40분부터 보충수업이 진행되었기에 학생들은 7시 30분까지 등교해야 했다. 7시 20분이 넘어서 등교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지각하지 않기 위해 뛰어서 교문에 들어섰는데, 수업에 늦지 않으려는 의지도 있었겠지만 지각하면 교문에서 벌을 받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이유야 무엇이든 신규교사가 보았던 학교의 아침 풍경은 끼니도 챙기지 못한 기진맥진한 아이들이 지각하지 않으려고 발휘하는 의지의 크기만큼 왠지 모르게 더 지치는 기운이 맴돌았다. 2005년도부터 2014년까지는 국방부 소속 고등학교, 보충수업이 없는 중학교, 그리고 스쿨버스를 놓치면 현실적으로 등교할 수 없는 상황인 재외국민학교에 근무했었기에 학교의 아침풍경이 잘 짜진 각본처럼 특별할 게 없었다. 그래서 2015년도에 재외국민학교에서 다시 한국의 고등학교로 돌아왔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성장기 학생들의 아침 식사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경기도 교육청에서 전격적으로 아침 보충수업 폐지와 9시 등교를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청의 이러한 조치는 학생들의 아침 식사권 보장을 통한 교육 활동의 질적 개선이었기에 교사로서 당연히 환영했고, 이로 인해 아침을 굶는 학생들도 많지 않을 것이며 지각하는 학생들의 수도 적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놀라운 반전은 등교 시간이 9시로 늦춰졌으나 여전히 상당수의 학생들이 아직도 아침 식사를 거르고 등교하고 있었고, 아침 생활지도의 주요 방점은 학생들의 안전지도였기에 지각 여부에 상관없이 학생들이 자유롭게 등교한다는 사실이었다. 9시 등교의 시행과 지각생들에 대해 학교 차원의 제재를 하지 말라는 교육청의 방침은 학생들에게 편하게 등교할 수 있는 학교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지도교사들에게는 아침부터 불필요한 감정교류를 하지 않아도 되기에 분명 유익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율적인 책임의식을 가진 건강하고 건전한 시민육성이라는 제도 시행의 취지와는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현장의 모습에서 나는 때론 신규교사 때 보았던 학생들처럼 자기 의지든 외력이든 지각하지 않으려고 지치게 뛰어오는 학생들의 풍경이 그리워졌다.
속설에 의하면 공자 시대에도 기성세대들이 “요즘 젊은 것들은 예의가 없다.”라고 얘기했다고 하는데, 그 시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실제로 했는지 여부에 상관없이 그 얘기에 내재된 의미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세대의 기본 가치가 변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느덧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내가 현시점에서 학생들의 자유로운 학교생활을 바라보는 관점이 구시대의 누군가처럼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꼰대적 시선으로 고정되어 부자연스러운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학교가 사회의 기본 가치를 가르치는 사회화 공간이라면 9시 등교와 자율권 부여라는 정책의 외형적 모형뿐만 아니라 정책의 기본 취지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는 학교 및 학생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학교와 사회는 따로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학교를 통해 사회화된 아이들이 미래의 우리 사회를 이끌 시민이 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