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꿈꾸는 학교에서 꽤 오랜 시간 기자를 꿈꿨습니다. 꿈에 불씨가 붙은 순간은 16살 때였습니다. 국어 시간에 ‘Heal The World’라는 책을 읽고 모피코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냥꾼들이 살아있는 하프실을 칼로 내리치는 모습, 피투성이가 된 몸뚱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에 한동안 눈을 의심했습니다. 친구들과 심각성을 공유하다 이 사실을 학교 사람들에게도 알리기로 했습니다. 전 학년에 동의를 구하고, PPT를 만들어 모피의 진실을 알렸습니다. 며칠 뒤 발표를 들은 한 아이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이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거리에 나가 작은 홍보 캠페인을 진행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번화가에 나가 피켓을 들었고, 시민들에게 리플릿을 전달하며 모피 제작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목소리를 내며, 세상의 변화에 참여하며, 잊지 못할 두근거림과 정의감을 느꼈습니다.

한국교원대신문에 들어와서는 마음 속 정의감을 글로 실현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우리학교에서 가려진 인권 침해가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기성언론이 주목하지 못한 사회적 약자가 있는지 민감하게 시선을 세웠습니다. 갑질 신고를 하신 선생님을 만나고, 노동조합을 만나고, 상당 규모의 시민 단체를 취재했습니다. 책임과 부담은 커졌습니다. 여전히 놓치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가 많았고, 타 언론사의 기사를 보며 제 능력과 앎의 깊이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정의감은 어느새 부담감이 되었고, 한 면이라도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기자들의 의견을 인정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신문을 만드는 일이 더이상 기쁘지 않았습니다. 멋진 기자가 되는 것은 늘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며, 따라갈 수 없는 희생과 민감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흐릿한 눈으로 사무사 주제를 찾는데, 마음이 뭉클해지는 기사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518일 광주의 옛 전남도청 앞에는 빨간 리본이 달렸답니다. 광주의 봄을 기억하며 많은 국민들이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열망합니다. 총구멍 앞에서도 고귀한 민주주의를 외치던 광주 시민들을 떠올리며 미얀마 시민을 바라봅니다. 그들과 함께 분노하고, 기억하고, 응원합니다. 비혼모가 되고 화제에 오른 사유리씨 이야기도 보입니다. 얼마 전부터 그는 육아 프로그램에 나오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등 뒤로 아이에게 쪽쪽이를 물리려는 모습, 차리다 만 끼니마저도 5분 안에 들이키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들기도 하지만, 행복 가득한 웃음으로 아이를 보는 그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댓글 속 사람들도 한 마음으로 그의 가족을 응원합니다. 아이가 환하게 살아갈 세상을 위해, 다양한 가족이 자유롭게 살아갈 세상을 위해, 인식을 돌아보고 바꿔갑니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신입사원 면접에서 성차별 질문을 받은 씨가 청원서를 적었습니다. “‘남들과 비슷하게, 그러니까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으로 만 25년간 쌓아온 공든 소망의 탑은 사건과 동시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범을 빼앗김으로써 부도덕한 사회의 얼굴에 새빨간 경고장을 붙이는 비범한 인간이 될 때, ‘평범을 빼앗김으로써 다른 의미로 비범한 인간이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져보지조차 못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인 이주민, 성소수자, 비정규직, 장애인, 저학력, 청소년, 여성들입니다.” 국가인권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지 15년이 지났지만 이 땅에는 아직 차별금지법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상처받지 않을 권리,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를 위해서는 전 국민의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힘을 합쳐 당연한 삶의 보호막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기사들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2년 간의 신문사 활동을 뒤로 하며 저에게 남은 것은 멋진 기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연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회 문제를 꿰뚫어보고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아름다운 사회를 위해 진정 필요한 건 함께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미얀마의 민주주의, 다양한 가족의 인정, 차별금지법. 긍정적인 움직임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거대한 바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목소리와 지지가 필요합니다. 모피의 진실을 알릴 때 정의감에 불타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기뻤던 것은 말을 걸어온 아이였습니다. 문제의식을 함께 느끼는 것,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움직인다는 것은 세상의 변화만큼이나 값졌습니다. 어느 자리에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사회를 비판하면 좋겠습니다. 연대의 힘을 느끼며, 거대한 바람을 이루는 작은 몸짓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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