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근거로 급조해 만든 법률, 특수한 상황에서 임시로 제정된 법률이 70년이 넘도록 형사특별법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표현의 자유·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차별과 배제·혐오를 조장하고, 민주주의 질서를 부정하는 기제로,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에 역행하는 제도로 이용되어 온 국가보안법은, 더이상 우리 사회에서 자리 잡아서는 안 됩니다. 이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청원합니다.”
지난 10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라온 ‘국가보안법 폐지’ 청원은 청원 9일 만에 동의인 10만 명을 돌파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시민단체와 정당의 움직임이 계속되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 반대파 제거 위한 국가보안법, 73년째 유지되고 있다
올해로 제정된 지 73년 된 국가보안법은 ‘국가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치안유지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과거 여순사건1)에 위기감을 느낀 이승만 정부는 해방 뒤 정치적 격동기의 ‘비상조치’로 한시법인 국가보안법을 입법했다. 이후, 국가보안법은 이승만 정부에 반대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으며 형법 제정 후에도 계속해서 유지되었다.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막고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역할로 이용되기도 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이 시작된 1948년에서 1986년 사이, 정치 사범 230명이 국가보안법으로 사형을 당했고, 고문을 당한 이들도 수천 명에 달한다.
◇ 국가보안법의 감시 속 우리는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
시민단체 연합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의 이종문 사무처장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우리는 많은 제한을 받아왔다. 국가보안법은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을 가로막고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들며, 성장해서도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정치 활동이나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문화예술의 자유 등이 제약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혐오와 차별이 일상화되고 만연되어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가 국가보안법과 분단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빨갱이, 종북이란 말이 만연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행동들이 제약받았다.”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에도 국가보안법이 영향을 미쳤다며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이 12%밖에 안 되는데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는 70~80% 정도 된다. 우리나라는 아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유롭게 이뤄지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운동들을 빨갱이, 종북이라며 매도해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옛날에 노동조합만 건설하려고 해도 공안 기관에서 탄압하며 ‘빨갱이’ 취급을 했다. 이러한 인식으로 여전히 노조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기가 어렵고 자기검열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주장했다.
최근 검찰의 국가보안법 기소가 줄면서 국가보안법이 사문화되었다는 주장에 대해 이종문 사무처장은 “14일에 국정원이 427시대연구원 소속 이정훈 연구위원을 압수수색하고 체포했다. 2017년에 이정훈 연구위원이 여러 연구위원들과 함께 저술한 '북 바로 알기 100문 100답'이 북의 지령을 받고 만든 이적표현물이란 이유에서다. 또, 출판사 ‘민족사랑방’의 김승균 대표가 (북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판매했다는 이유로 서울경찰청에게 출판사와 자택을 압수수색 당했다. 여기서 문제는 3주 전에 법원에서는 보수단체가 제기한 책 판매금지 신청을 기각했다는 것이다. 이는 판매 가능하다는 말인데도 서울경찰청에서는 김승균 대표를 압수수색했다. 국가보안법은 현재도 많은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 출판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검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2017~2020년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사람은 94명이며 사건 접수는 수백 건에 달한다.
◇ 국가보안법은 완전 폐지되어야 한다
지난 10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청원’을 시작했다. 이후 19일, 청원 동의인은 10만 명을 달성했다. 이종문 사무처장은 “그동안 많은 피해자가 있었지만, 정치 역량이라든지 폐지하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총선 이후로 변화와 혁신을 할 수 있는 국회 진영이 이뤄지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바라는 수많은 시민의 요구가 드러난 결과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규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가보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다. 지난 20일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국가보안법 폐지법률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이날, 정의당은 당론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확정했다고 밝히며 다른 정당에서도 이를 당론으로 삼을 것을 촉구했다. 이종문 사무처장은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국가보안법의 가장 큰 핵심이 7조이다. 고무찬양, 이적표현물 소지, 배포 등의 내용인데 대부분이 7조로 처벌받아 그것을 없애는 것도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완전 폐지 필요성을 주장하며 “제정 당시에도 임시적,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만든 법인데 73년째 유지되고 있다. 앞서 말한 법원의 책 판매 허가와 무관하게 김승균 대표를 압수수색을 하고 처벌하려는 것은 법 위에 국가보안법이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 위에 군림하며 인권을 제약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종문 사무처장은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에서는 6, 7, 8월에 시민들과 폐지에 대한 여론을 모으는 교육 선전 홍보 활동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6월 1일에 우리 사회의 원로분들이 폐지 촉구 선언을 할 예정이고,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종교계가 모여서도 폐지 선언을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활동 계획을 밝혔다. 현재 국가보안법폐지국민행동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선언’ 인증 활동을 하며 국민의 폐지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이종문 사무처장은 “국가보안법 폐지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특수한 몇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이라고 (일부 단체에서는) 주장하겠지만, 사실 모든 국민이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일부의 문제 해결이 아닌,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1) 여순사건: 1948년 10월 19일 여수·순천 지역에서 국방군 제14연대 소속의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출동을 거부하고, 친일파 처벌, 남북통일을 주장하며 무장봉기를 일으킨 사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