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내 사람만 있는 게 꼭 좋다고 단정 짓긴 어렵다. 하지만 우린 안다. 그런 사람들과 있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편하다는 것을,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는 것을.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마주한다. 길을 걸으며, 수업을 들으며 또 밥을 먹으며 한 번 보고 잊힐 사람부터 내 사람으로 함께할 사람까지. 우리는 그들과 마주해왔고 또 마주할 것이다.

사람을 안다는 건 무엇일까? 어느 정도의 사이여야 ○○○ 알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로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정도? 대충 인사하는 정도? 그것도 아니면 그 사람의 존재를 아는 정도?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안다는 것인간에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이며, 관심이라는 으로 무지라는 가면을 떼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의 인간관계는 앎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는 사람과 함께 소통하고 행동하며 감정적 교류가 오간 이후에, 내가 그에게 관심애정을 줄 수 있다면 나에게 있어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된다. 반대로 그에게 모종의 이유로 관심은 줄 수 있지만 애정은 줄 수 없다면 의 기준에선 그는 좋지 않은 사람 혹은 아는 사람으로 남겨진다. 여기서 좋지 않은 사람이나 아는 사람에게 굳이 관심은 왜 주느냐 물을 수 있겠다. 이에 그가 이미 아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아는 사람이니까, 가면을 떼어낸 얼굴을 보았기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정을 준다는 건 무엇일까? 이는 일종의 인간적 호감이라 말하고 싶다. 사람 대 사람으로, ‘사람으로서 호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상대를 좋은 사람이라 판단하는가? 무엇을 보고 애정을 줄 수 있는가?” 재력? 외모? 사회적 지위? 여러 능력? 이러한 외부 요소들은 결론적으론 인간적 호감에 영향을 미치는 한 요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애정은 사람이라는 면에서 호감을 느껴야 줄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란 인식은 단방향적이다. 우리의 인식은 에 의한 것이기에 내가 상대를 좋은 사람으로 인식해도 상대는 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서로 관심과 애정을 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관계의 발전을 통해 서로를 믿게 되고 나의 사람이라 생각하게 된다. ‘내 사람에게는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으며 이전보다 더욱 깊은 감정과 이야기를 공유한다.

한편 이런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실리적으로, 물질적으로 이득이 될 수 있는 사람만 찾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을 사람이 아닌 수단으로 보는 눈빛을 한 채 필요에 의한 만남만 갖는 사람들. 그런 외부적인 요소들을 애정으로 착각해 내게 이득이 될 것 같으면 다가가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딸려오는 인간관계 속 공허함은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자. 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심리적 안정감과 소속감은 물질적인 것이 채울 수 없는 것, 그 너머에 있다.

모든 사람을 다 좋은 사람으로 봐야 하고 다 인간적인 면모로만 봐야 하는가?”라며 누군가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선이고 환경이다. 일이나 과제,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와 같이 우선적으로 서로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는 그들의 외부적인 요소를 필요로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목적 없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에는 외부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들을 아니 우리들을 바라보자.

사람을 사람으로 볼 때, 내 사람과 함께 할 때, 얻는 것들. 그것은 다른 어떠한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오로지 내 사람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묻은 것 많은 유리를 닦아내듯 인간관계라는 유리의 겉을 닦아내고 그 너머로 진정한 사람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내 사람을 사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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