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종종 숨이 가빠지며 겉잡을 수 없는 불안 상태에 빠지곤 했다. 속이 매스껍고 세상이 핑 돌면서 머리가 깨질듯 아팠다. 수험 생활을 하면 살이 찔 거라는 예상과 달리, 언제 아픔이 찾아올지 몰라 아침과 급식을 먹지 않았다. 시험 때 증상이 발생하면 올 것이 왔구나싶으면서도 주변을 먼저 살펴야 했다. 갑자기 의식을 잃거나 구토를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펜을 내려 놓고 몸을 진정시키기 바빴다. 상황을 보신 담임 선생님은 이후 시험부터 나를 별실에 배치하셨다. 3학년이 되고, 수능은 어떻게든 함께 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매달 모의고사에 임했다. 점차 강해지리라는 기대와 달리, 몸은 더 악화됐다. 새 담임 선생님은 별실 시험을 위해 받아와야 할 진단서의 내용을 알려주셨다. 늘 다니던 한의원과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 갔다. 하지만 선생님은 진단서를 보시더니 받지 않으셨다. 이 정도론 안 된다. 당신이 요구하신 더 구체적이고 심각한 내용들이 진단서에 그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험장도 걱정이었지만, 고개를 푹 숙인 채 느꼈던 당혹감과 억울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아픔인데 더 아파야 한다니. 지금까지의 고등학교 생활이 증명하는데 아픈 것을 더 증명하라니. 내 아픔은 특권이 아닌데. 시험장에서 하얗게 질려 벌벌 떨 뿐인데. 눈 앞이 아득해진 교무실 오후였다.

꺼내보고 싶지 않은 과거가 스쳐간 것은, 아시아나항공 전 대표에게 벌금 200만원이 확정되었다는 기사를 보았을 때였다. 김수천 전 대표는 2014년부터 약 1년 간 승무원 15명이 138번 신청한 생리휴가를 받아주지 않고, 되려 생리현상이 사실인지 소명하라고 요구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생리휴가 청구가 휴일이나 비번과 인접한 날에 몰려 있고, 생리휴가가 거절되자 여러 번 다시 청구하는 등 생리현상 존재가 의심스러운 사정이 많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지난 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 씨는 당일 생리휴가를 신청했지만 생리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확인이 필요할 수 있다며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받았다. “아프면 사람은 일반적으로 병원을 가야 하는데, 생리통도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 “다른 회사에서는 생리대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기도 한다는 것이 그가 들은 말이었다. 상담사 씨는 당일 생리휴가를 신청했지만 약을 먹고서라도 출근을 해 휴가원을 작성하거나, 나올 수 없는 상태면 연차를 쓰라는 말을 들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생리 기간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다는 점, 불규칙적인 생리 기간에 대한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점 등으로 인해 여성들은 노동 현장에서 고통을 누르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73조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청구할 경우, 사용자는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주장하려면 먼저 자신의 아픔을 증명해보여야 한다. 거짓이 아님을 설명해야 한다. 김 전 대표의 벌금형이 확정되었을 때 일각에서는 생리휴가를 연휴로 이용한다, 생리휴가가 특혜라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악용을 의심하기 전에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당사자의 아픔이다. 몸에 이상이 생길 경우 사람은 누구나 휴식을 취해야 한다. 충분한 회복기를 갖고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 생리휴가뿐이 아니다. 우리나라 노동 현장에서는 아프더라도 몸을 먼저 살피기 어렵다. OECD 회원국 중 법정 병가(유급, 무급)와 상병수당 제도가 모두 없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쉴 권리를 부여해 건강악화, 실직해고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며, 병가 사용 시 발생하는 소득 상실의 위험도 존재하는 현실이다. 아픈 몸을 젖혀놓고, 시선과 후사를 걱정하는 노동자들의 막연함은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한다. 필자는 한 번의 기억이었지만, 노동자들은 지탱해야 할 삶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한국교원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