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 파견교사 (중국어교육 전공)
몇 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교직 생활. 대학 졸업 후 교단에 서게 되면서 나름 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했다. 임용이 되던 첫 해, 그 당시는 신규발령교사가 요즘같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젊은 선생님이 지금에 비하면 흔치 않았기에 아이들의 관심과 선배 교사들의 애정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더구나 중국어라는 과목이 학교에 처음 선택과목으로 채택되다 보니 과목 자체에 대해서도 다소 생소하다 못해 신기해했다. 모든 것이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신규교사로서 열정을 가득 가지고 출발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담임을 맡게 되면서 또 다른 경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중학교 발령은 생각지 못했기에 몇 년 동안은 질풍노도의 혈기왕성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데 적응을 해야 했다.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니 나 또한 젊음이라는 큰 자산이 있었기에 무모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그 시기를 잘 헤쳐 온 듯하다. 업무도 열심히 했다. 학생 지도하는 방법을 배워보겠다고 남들이 가기 꺼려하는 생활지도부에 자원해서 들어가 4년을 있었다. 그래도 고생하는 만큼 같이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셨기에 그 기간을 버텼다. 임용과 동시에 교과연구회에 가입해 꽤 오랜 기간 동안 몸담아 일하기도 했다. 동 교과의 여러 선생님들과 교류하며 총회, 대회, 연수 준비 및 자료 제작 등 여러 가지 경험도 해보았다.
당시에는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잘 몰랐다. 이렇게 시간이 한참 지난 후 돌아보니 그 당시가 참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나 스스로도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내 일에만 열중할 수 있었다. 그만큼 부족하나마 아이들한테도 많은 애정을 주려고 노력했었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교과와 업무, 담임 일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 정도의 경력을 가진 선생님이라면 대부분 거칠 과정이기도 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 것 같지만 저렇게 에너지 넘치는 시절, 나에게 있어 대학원 진학은 미뤄두고 싶은 숙제였다. 임용 때부터 언젠가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그 다짐이 실현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계획보다 오랜 휴직으로 차츰 젊은 시절의 패기 넘치던 내 모습은 또 다른 나로 대체되었다. 다시 돌아간 학교 현장에는 더 이상 예전의 아이들도 선생님도, 나도 없었다. 나를 감싸고 있던 예전의 호기도 없었고, 의지도 없었고 응원해주는 분위기도 없었다. 당혹감과 좌절감이 밀려왔다.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무언가 다른 자극과 도움이 필요했다. 나 스스로 일어나야 했다. 그 절실함이 이끌었을까? 지금은 이렇게 대학원생이 되어 학보 기고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의 2년은 시간을 가지고 달라진 학교와 학생들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를 한 단계 성장시킬 기회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이 다짐이 나태함으로 변하지 않도록 끈을 놓지 않아야한다. 학과장님과 면담을 하면서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앞으로 나 자신에게 온전히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있기 힘들 수도 있으니 지금을 즐기면서 열심히 하라고. 오랜만에 나에게 집중해서 예전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하루하루 착실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2년 후의 내 모습이 조금은 걱정스럽기도, 궁금하기도, 기대되기도 한다. 2년 후 교단에 서는 내가 예전과 같이 준비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되찾도록 오늘 하루도 더 분발하며 알차게 채워가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