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 ‘설득과 공존’으로 해결해나가야
3월 30일,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사회과 3과목 교과서(역사총합·지리총합·공공) 30종에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위안부 문제 축소 ▲제국주의·식민지배 정당화 등의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검정을 통과한 중학교 역사교과서 1종은 임나일본부설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 외교부와 교육부는 일본교과서의 역사 서술 시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이신철 공동위원장은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에 무분별한 비판보다는, 공동의 역사 인식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 모든 일본 고교생, “독도는 일본 땅” “위안부 강제성 없다”고 배운다
검정을 통과한 사회과 교과서 3과목 30종에서는 모두 독도가 일본 영토라고 주장한다. 그중 지리총합 교과서 6종에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했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공공 교과서 12종 역시 일본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과정을 서술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2018년 고시한 ‘고등학교학습지도요령’에서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내용을 가르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이 요령을 따르지 않으면, 교과서 심의 과정에서 ‘부적절’ 의견을 받고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
식민·전쟁 범죄도 흐릿하게 서술했다. 역사총합 12종 중 단 한 곳만이 위안부의 ‘강제성’을 서술했다. 특히 제일학습사 역사총합 2권 모두 “여성이 위안부로 전지에 보내졌다”는 설명을 실었다. 한반도 출신 여성의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 피해자를 동원한 주체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은 것이다. 야마카와 출판사의 교과서는 “여성을 모아 일을 시켰다”는 식의 서술을 통해 피해자가 겪은 인권 침해와 고통도 모호하게 표현했다. 제국주의 일본의 침략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제국서원, 제일학습사, 야마카와 출판사의 역사총합은 제국주의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표기했다. 여기에는 러일전쟁이 아시아 국가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는 내용도 담겼다.
검정을 통과한 지유샤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도 한국 관련 역사가 왜곡 서술되어 있다. 임진왜란을 ‘조선출병’으로 기술했고, 임진왜란 진행 경로 지도를 ‘조선출병지도’라고 했다. 임나일본부설도 부활했다.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의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이 설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한국 침략과 지배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교과서에서는 임나일본부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이 설에 입각한 서술 내용과 지도를 삽입했다. 해당 설은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났지만, 이번 검정에서 부활했다.
◇ 일본의 역사 서술, ‘과거사에 대한 반성’ 부재해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는 1990년대 후반 우익단체 ‘새로운역사교과서를만드는모임’이 결성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어 왔다. 현재까지도 왜곡의 기미는 줄어들지 않은 채 오히려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신철 공동위원장은 일본의 역사 왜곡 의도에 대해 “일본의 극우 세력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처럼 자국의 세계적 영향력이 확장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 개정을 통해 강력한 군대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역사 교육을 통해 전쟁의 책임을 다했고, 식민지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다는 것을 가르침으로써 군사적·경제적 힘을 회복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최근의 역사교육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목표로 한다. 충성스러운 국민보다는 ‘비판적이고 자기성찰적인 역사인식을 지닌 시민’을 양성하고자 한다. 20세기 침략과 전쟁으로 물든 인류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반식민주의·반인종주의 역사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고, 이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이번 검정 결과는 일본에서 ‘인류사적 반성’에 기초한 역사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 직접적인 항의보단 ‘설득과 공존’을 통한 해결 고민해야
3월 30일 오후,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일본교과서의 왜곡된 서술 시정을 요구했다. 교육부도 31일 서술 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내고, 최근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일본의 독도주권 침해에 맞서 독도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신철 공동위원장은 “정부 차원에서의 대응은 필요하다. 하지만 직접적인 항의를 통해 상호 이해를 기반으로 한 역사 교육의 방향을 잡아나가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전망했다. 이어 “우리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역사 인식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역사적 근거나 역사 인식의 올바름을 증명하는 자료를 만들고 외국과 교과서 집필진 관계자 등에게 홍보해야 한다.”라고 설명하며, 정부는 이러한 연구나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이신철 공동위원장은 “적대 의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일본의 의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 시민들을 만나면 역사 문제에 대해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이웃 사람, 이웃 국가들과 어떻게 공동의 인식을 가지고,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공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