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B. 긴급 연락처. 사랑해 엄마. 오늘 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나를 떠올리며, 팔뚝에 급하게 신원을 남긴다. 피 범벅이 되어 끌려갈 것을 알면서도 목소리를 죽이지 않는다. 세 손가락을 세운다. 앞으로 나간다. 총성과 연기로 아수라장이 되고, 가빴던 숨결은 주검이 되어 바닥에 쓸려간다.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는 당신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족. 꿈꾸던 미래. 행복했던 일상.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기 직전 모두에게 선명했던 그것은, 민주주의다.
이라와디강 유역, 버마족 왕국으로 시작된 미얀마는 19세기 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아웅 산은 버마독립군을 결성하여 일본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주도하였다. 소수민족들은 영국을 포함한 연합군 편에 섰다. 1947년, 아웅 산은 소수민족과 협상하여 팡롱협정을 맺었다. 소수민족의 자치를 존중하는 연방국가를 설립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구의 70%를 차지한 버마족은 중앙집권적 통치를 단행했다. 민주주의의 희망은 사라지고, 소수민족들은 무장투쟁을 하여 독립과 자치를 요구했다. 이와 더불어 주변 소수민족 분리독립에 영향을 주었던 국부군 패잔부대가 북부 접경 지대를 점령하면서, 초대 총리 우누는 힘을 잃고 네윈의 군부에 권력이 집중되었다. 1962년, 네윈은 쿠데타를 일으켰다. 버마사회주의계획당을 조직하여 일당 체제를 구축하였고, 사회주의, 버마족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소수민족을 탄압했다. 시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1988년, 그들은 양곤의 봄바람을 염원하였고 일명 ‘8888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외쳤다. 하지만 군부는 무차별 진압으로 3천여명을 죽였다. 5월 18일 광주의 모습과 같았다. 영국에서 귀국한 한 여인이 미얀마 시민들의 울부짖음에 힘을 실었다. 아웅 산 장군의 딸인 아웅산 수치는 50만 군중 앞에서 군부독재를 비판했다. 야당 인사들을 모아 민족민주동맹(NLD)를 창설하여 의장이 되었다. 거대한 민주주의의 물결이 일자 군부는 다당제 선거를 허용했다. 민족민주동맹은 의석의 80%를 차지하여 압승했다. 하지만 군부는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수치를 구금했다. 시민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8888 항쟁’에 이어 2007년 샤프론 혁명이 일어났다. 국제정세도 변했다. 미국의 본격적인 제재와 지원, 미얀마 이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 속에서 군부는 한발 후퇴했다. 다당제 투표를 허용했으나, 의회 의석의 25%를 군부가 차지하고, 치안, 국방 등 핵심 부서의 장관을 독점하도록 헌법을 바꿨다. 2010년, 민족민주동맹은 참여하지 않은 총선이 이루어져 군부가 이어졌다. 수치의 가택연금이 해제된 2015년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은 전체 선출직 의석의 80%, 전체 의석의 59%를 확보하며 압승했다. 외국인을 배우자로 둘 경우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헌법 하에 수치는 국가 고문이 되었다. 군부는 수치를 위기로 몰았다. 그들은 미얀마 서부 연안에 사는 로힝야족을 탄압하고 축출했다. 수치는 로힝야족을 혐오하는 버마족의 표심을 유지하고자 했기에, 이를 옹호했다. 하지만 민심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작년 11월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은 전체 선출직 의석의 83%, 전체 의석의 62%를 거머쥐었다. 군부의 입지가 위기를 맞았다. 로힝야족 축출로 서방의 제재를 받게된 데다, 중국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맺은 수치로 인해 버팀목이었던 중국의 지지가 줄었다. 2월 1일, 군부는 총선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명분으로 세 번째 쿠데타를 일으켰다.
총탄을 마주하는 상황에서도 미얀마 시민들은 성숙하고 평화롭게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눈물 어린 진심을 담아 민주주의를 열망한다. “필요한 만큼 가져가고 반드시 살아오겠다고 약속해주세요”라는 팻말을 들고 헬멧과 보호조끼를 나눠주는 판매상. 치마 아래로 지나가면 남성성을 잃는다는 미신을 역이용하여 옷가지를 곳곳에 널어놓은 여성들. 인터넷이 끊긴 상황에서도 SNS에 접속하여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만한 시위 장면을 연출하는 Z세대 청년들.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기사로 올라오는 잔혹한 죽음에 간간히 안타까워만 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진실된 공감을 위해서는 미얀마의 역사를 함께 밟아가며, 그들이 저항하는 부당한 과거를 이해해야 한다. 또한 독재 정권에 맞섰던 우리의 민주화운동을 떠올리며,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을 마음 속에 되살려야 한다. 미얀마의 봄은 반드시 올 것이다. 우리는 눈을 감지 않고, 꽃이 피는 그날까지 당신들과 함께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