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에서는 분노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다 마지막 수단으로 동원되는 것이 바로 분노이다. 어릴 적, 장난감을 얻기 위해 마트에 주저앉아 울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 내용에 적당히 공감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 공감은 서서히 깨지고 있다.

2021123, 방송인 김새롬은 실언을 하나 내뱉었다. GS홈쇼핑 채널에 출연하여 제품을 홍보하던 중 “‘그것이 알고 싶다끝났나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라고 말한 것이다.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16개월 입양아 사망 사건’, 일명 정인이 사건의 후속 방송을 했다. 해당 사건은 피해 아동 정인(사망 당시 16개월)’이 장기간 학대를 당해 사망한 사건이다. 말할 수 없이 잔인한 이 사건은 전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김새롬의 발언은 이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다가오기에 많은 비난을 받았다.

김새롬은 이에 대한 사과문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내용이 정인이 사건인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본인도 해당 사건에 큰 슬픔을 느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고 그녀는 선을 넘는 욕설과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녀의 발언이 경솔했던 것은 분명하다.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인이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던 점, 자신의 방송을 위해 타 프로그램을 함부로 평가한 점, 더욱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프로그램을 경솔하게 언급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선을 넘는 욕설과 비하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추모? 재발 방지? 가해자에 대한 엄벌? 그 무엇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의미 없는 희생양이 있었을 뿐이다.

김새롬의 일은 목적 없는 분노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수단으로서의 분노는 통제가 가능하다. 분노 외에도 충분히 더욱 합리적인 수단들이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분노 자체가 목적인 분노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정상적인 비판은 대상의 잘못된 지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대상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폭주하는 분노에는 그러한 목적이 없다. 가장 무서운 점은 이것이다. 이 질주에는 목적지가 없다. 그냥 달리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기에.

분노로 타오르는 것은 쉽지만 그 열기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사진이나 활자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러니 분노를 제어해야 한다. 제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노 방지턱이다. 화가 끓는다면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해보자. 이 분노의 방향은 어디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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