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다 성희롱에 이어 알페스 논란이 뜨겁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 논란의 흐름을 따라가 본다. 알페스 논란의 등장 배경과 처벌 가능성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주목해야 할 점을 짚어본다. 알페스와 N번방, 딥페이크의 차이점을 이해한다. 궁극적으로 알페스 논란에서 보아야 할 본질을 찾고,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한다.
◇ 알페스는 언제 뜨거워졌나
‘알페스’는 영문 ‘Real Person Slash’를 한국어로 줄인 말로, 실존 인물을 소재로 허구의 애정 관계를 다룬 글이나 그림 등의 2차 창작물을 뜻한다. 이러한 알페스는 성별을 떠나 임의로 커플을 만드는 시도로 과거부터 이어져 왔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1세대 아이돌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는 ‘팬픽’ 문화에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소설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영상 등의 콘텐츠로도 확장되었다.
알페스 논란은 지난 1월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 논란에 이어 떠올랐다. 남성 커뮤니티에 이루다를 성희롱한 대화가 올라온 것에 대해 인공지능 윤리 논란이 발생하자,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실제 인물을 다루는 알페스가 더 나쁘다”며 ‘알페스는 성착취’라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들은 알페스 대상이 되는 아이돌 멤버 상당수가 미성년자라는 점을 지적하며, 작품의 강도 높은 성적 묘사가 아이돌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다고 말했다. 또한 팬들 사이에 퍼진 알페스 문화가 일종의 소비 권력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알페스의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일각에서는 알페스를 “제2의 N번방”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남성 가해자의 성착취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알페스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라넷’, ‘텔레그램 N번방’ 등의 사건이 비판받았을 때, 일부 남성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여성들이 창작하는 ‘팬픽’ 역시 성희롱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알페스 논란은 남성들만 사이버 공간에서 성착취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 또한 남성들을 성착취한다는 식의 ‘고발성’ 공론화의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남초 커뮤니티의 일반인 여성 대상 성희롱, 여성 아이돌 대상 딥페이크가 문제되자 알페스 논란이 공론화된 것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성착취 문제를 흐리는 차원에서 알페스 논란을 일으킨 모습, 알페스가 성 대결을 부추기는 일종의 ‘맞불 전략’으로 이용된 양상이 주목된다.
◇ 현행법상 처벌 가능성이 모호한 알페스
알페스는 아이돌 팬들의 하위문화로서 활발히 기능해왔다. 그러나 일부 콘텐츠에는 팬심을 기반으로 창작된 것이라 보기에는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대상이 되는 아이돌 멤버 상당수가 미성년자라는 점에서 사이버 성폭력의 사례로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든 알페스를 처벌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으나 사회 윤리나 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창작물은 분명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다만 실제 형사적 처벌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아직까지 알페스와 같은 2차 창작물이 형사적 처벌을 받은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몇몇 알페스의 경우, 법적 처벌을 논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적 묘사가 있는 경우 아동 및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제11조에 의해 징역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아청법상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은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이기 때문에 텍스트로 이루어진 알페스는 처벌이 어려운 것이 실정이다. 둘째, 알페스의 표현 수준이 사회상규에 위배될 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 제1호, 제74조 제1항 제2호에 따라 음란물에 해당하면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조차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면에서 처벌이 어렵다. 또한 김연수 변호사는 알페스와 관련해서 명예훼손과 모욕죄를 검토해 볼 수 있지만, 실제 형사 고소 또는 처벌까지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명예훼손이 인정되려면 사실 적시나 허위 사실이어야 한다. 그리고 모욕이 인정되려면 창작자가 모욕의 의지를 가지고 경멸감을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알페스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기에 사실 적시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처음부터 픽션임을 전제하기에 허위 사실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고, 모욕 역시 해당하지 않기에 김연수 변호사는 당사자의 불쾌감이 전제되어 있더라도 형사적 대응이 어렵다고 본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에 따른 처벌도 힘들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2항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이에 따른 촬영물 또는 복제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전시·상영한 자”를 처벌한다. 하지만 알페스는 글이나 만화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물’이나 이에 따른 ‘복제물’에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통상적인 음란물 유통과 달리 알페스는 처벌이 어렵다. 성폭력처벌법 제13조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조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조항은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을 처벌한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이라는 구절로 인해 처벌이 어렵다. 알페스에 특정 아이돌의 동성애 묘사가 노골적으로 나타나더라도,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게 온라인에 게시했다면 추행 대상, 즉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하려는’ 행위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처벌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 알페스는 제2의 N번방? “성착취물과 구분해야”
알페스에 대한 법적 처벌 가능성이 모호한 상황에서, 지난 달 11일 알페스를 처벌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이에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지난 달 19일 알페스와 아이돌의 목소리를 편집하여 만든 섹테(Sextape)의 제조자 및 유포자 110명을 처벌해 달라는 수사의뢰서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제출하였다. 또한 하 의원은 이달 10일 성폭력처벌법의 일부개정법률안, 즉 알페스 제작·유포처벌법을 대표 발의했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 처벌 대상에 ‘촬영물’이나 이에 따른 ‘복제물’과 함께 실존 인물 대상의 글과 그림도 명시하도록 규정하는 것이다. 하 의원은 알페스가 ‘제2의 N번방’과 동일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알페스를 성착취물과 동일시하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알페스가 N번방 성착취물, 딥페이크와 같은 성착취물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서승희 대표는 “알페스, N번방, 딥페이크는 모두 온라인 공간을 이용한 성폭력이기에 피해자 및 가해자 수의 확장이 뛰어나다. 하지만 N번방은 협박과 강요를 통해 성착취물을 구현해냈다. 반면 알페스는 팬덤 속에서 행해지던 하위문화로서, 성착취 산업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N번방과 알페스는 배경 및 구성적 측면, 피해자의 고통 및 회복성에 차이가 있다”며 N번방과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즉, N번방은 권력 구조를 기반으로 아동·청소년을 성착취한 성범죄이고, 이와 달리 알페스는 권력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어 “문화적 차원에서 딥페이크와 알페스도 차이가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에서 보였던 가학성을 이루다와 딥페이크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고, 특히 이는 이루다를 통해 증명되고 재현되었다. 이렇게 여성을 지배하고자 하는 범죄가 또 다시 현실에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알페스는 가학성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알페스는 권력구조가 있는 N번방, 딥페이크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하지만 일부 알페스의 경우 앞선 법령들에서 지적했듯 미성년자 대상의 성적 묘사가 있는 점, 사회상규로부터 위배된다는 점 등 그 내용에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알페스를 성착취물과 구분하여 자체적인 문제 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 ‘입법 보완’과 ‘인권 존중’ 통해 ‘사이버 성폭력 근절’ 이끌어내야
하 의원이 발의한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김연수 변호사는 “현행법만으로도 충분히 문제 소지가 되는 알페스의 처벌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법 개정은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서승희 대표는 “알페스 논란은 알페스를 N번방과 동일선상에서 보는 시각에서 촉발되었기에, 법안 발의 배경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센터 상담 통계를 보면 촬영물 이외에도 텍스트나 그림과 관련한 성폭력 사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어 처벌이 불가능하다. 그런 부분의 입법 공백을 메우고, 차후에 발생할 사이버 성폭력의 예방과 피해 지원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법안 발의 내용에는 동의한다”며 법 개정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현재까지는 개정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지속되는 범죄에 대한 처벌 사각지대를 막기 위해, 나아가 온라인 공간의 확장과 발달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입법 보완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N번방, 이루다 성희롱, 알페스, 딥페이크 논란은 성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하지만 이 논란과 갈등 속에서 흐려지는 본질은 바로 ‘사이버 성폭력 근절’이다. 서승희 대표는 “일련의 사건의 해석을 성별 대립 구도보다는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을 성폭력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영역을 명확히 짚고, 입법과 정책으로 보완해가는 과정에 두어야 한다”며 사이버 성폭력 근절에 주목했다. 또한 “확장된 온라인 공간에 비해 시민의식이 부재한다. 디지털 시민성이 폭력과 혐오를 줄여나가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들도 법이 규정하는 범위 이상으로 적극적인 윤리 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의식적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연수 변호사는 “우리 사회는 N번방 발생 직후 바로 성폭력처벌법 개정을 이뤄냈다. 지금처럼 사회 논란에 관심을 갖고 사회 구성원들의 공론화 노력을 통해 입법 보완을 해 나가면 된다”며 사회적 관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범죄는 대상의 주체성을 말살하고 자신의 성욕을 채우는 도구로만 취급할 때 발생한다. 따라서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의 인권을 존중할 때 건강한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며, 이는 성폭력 근절의 기본이 된다. 우리는 현재 진행형인 성별 갈등에 소모되기 보다는, 그 속의 ‘인권 존중’의 가치에 주목하고 이를 실현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사이버 성폭력 근절’을 위한 하나의 퍼즐이 완성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