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우(컴퓨터교육·17) 학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젊은 선원 마틴 에덴은 어느 날, 곤경에 빠진 청년을 구해주어 청년의 집에 초대받게 됩니다. 마틴은 곧 그 집에서 만난 귀족 가문의 딸 엘레나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되고 많이 배우고, 익히고, 쓰고 싶다며 그녀에게 마음을 표현합니다.

하루하루 근근이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마틴과 정식 학교교육은 물론 예의범절을 몸에 갖추고 살아 온 엘레나의 사이는 도저히 좁혀질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선박에서 계약 종료로 해고된 마틴은 친구 니노의 소개로 주물 공장에서 같이 일을 하게 됩니다. 매일 똑같은 하루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쉴 시간밖에 없음에도 마틴 에덴은 꾸준히 책을 사고 읽고 자신만의 시나 짧은 산문을 적어서 엘레나에게 보냅니다. 엘레나는 그에게 생동감이 느껴지고 훌륭한 글들이지만 겪어보지 않은 일들이라서미적으론 판단하지 못하겠다는 답변을 덧붙여줍니다.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낀 니노가 공장에서 쫓겨남에 따라 마틴은 남은 전재산을 갖고 제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결심을 굳힙니다. 엘레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타자기를 구입하고 정식 학교교육부터 다시 받으라는 엘레나의 말에 평생교육기관에도 상담을 받아보지만 돌아오는 건 초등학교부터 시작해야 될 정도로 기초 상식이 부족하다는 말뿐입니다. 차마 학교를 다닐 돈은 없어 닥치는 대로 읽고 쓰던 마틴 에덴은 잡지사에서 원고를 투고 받는다는 내용의 광고를 보고 자신의 소설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마틴 에덴>은 작가가 되고자 하는 남자의 창작욕과 부서지지 않는 세상의 벽이 충돌하는 모습을 드러낸 영화입니다. 원래부터 책 읽는 것을 즐기던 마틴 에덴은 엘레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마음속에 숨어 있던 자신도 모르는 욕구가 불타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어떻게든 이를 표출하기 위해 그는 계속해서 쓰고 또 읽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오는 평들에는 이야기가 너무 슬프다거나, 날것의 그대로를 담고 있다, 당신이 보고 느낀 것들이라는 건 안다는 둥 퍽 만족스러운 감정이 들어있지는 않습니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면서 현실의 흐름과 계급의 차이가 눈에 띌 정도로 크게 그의 삶을 파고듭니다. 사회주의에 물들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이탈리아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한창이었지만, 마틴 에덴은 사회주의자가 아닐 뿐더러 한 노동자는 단상에 올라 파업을 하면 이득을 보는 건 노동조합이지 우리 노동자 개인들이 아니라는 연설도 덧붙입니다. 오랜만에 엘레나를 보기 위해 그녀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된 마틴 에덴은 자신을 하층민 청년이라며 알게 모르게 무시하는 분위기와 짓궂은 장난 속에서 눈도 깜빡하지 않으며 한 늙은 문학가의 관심을 끌게 됩니다.

영화가 흐를수록 마틴 에덴은 작가로서 정체성을 얻게 되고 스스로의 의견을 피력해야 되는 때에 맞서기도 합니다. 총명하면서도 심연 가득 깊어 보이는 주연 배우 루카 마리넬리의 눈 연기와 그의 변화하는 모습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미동조차 하지 않을 현실의 벽에 계속해서 머리를 들이 받는 마틴 에덴의 심정을 절절히 전달하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잊히지 않을 호의들, 좋은 사람들, 가슴 뛰는 순간과 옛 추억들이 갖은 푸티지와 자료 화면들로 등장인물의 감정을 대변해주듯 삽입되어 있는 <마틴 에덴>은 오랜만에 극장가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도 낭만적인 영화 중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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