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신성아 기자
사진 / 신성아 기자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 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자, 하게.

 

- <그 쇳물 쓰지 마라> 중에서

 

에너지 뱀파이어를 조심하라!’ 요즘 청년층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에너지 뱀파이어란, 하소연을 통해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을 전파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타인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빨아먹는다는 의미에서 생긴 비유적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이 생겨났다는 것은 현대인들이 그만큼 정신적 피로에 시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대인들은 피로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훌륭한 사회 부품으로 기능하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며 피로를 자처한다. 이렇게 피로하다 보니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에너지도 없다. 옆 사람이 어떻든, 우선은 내 에너지 절약이 1순위. 공감은 힘들고, 기운 빠지는 일일 뿐이다. 이렇듯 인간소외가 만연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반사회교육과 허수미 교수는 가장 작은 목소리, 가장 따뜻한 삶의 자세를 들려준다.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무엇인가요?

저에게 인생의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언제라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책이 하나 있어요. 바로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책이에요. 십수 년 전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에서 삼순이가 읽었던 책으로 유명해졌었는데, 저는 그것보다 훨씬 이전에 읽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해서 읽게 됐죠. 사실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이걸 권해도 괜찮을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아직도 저에겐 너무 의미 있는 책이라 이 책을 소개하려고 해요.

그리고 모모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을 두 권 더 소개하고 싶어요. ‘그 쇳물 쓰지 마라우리는 미화되었다라는 책이에요. 이 책은 제가 최근에 읽은 책인데, 모모랑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라서 같이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 가져왔어요.

 

이 책들은 어떤 내용인가요?

모모는 허름한 시골 도시에 사는 꼬마 소녀 모모가 도시 사람들과 친구를 맺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담은 책이에요. 주인공 모모는 가진 것 하나 없는 조그만 소녀지만,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재능이 있었어요. 그래서 도시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 모모를 찾아와 하소연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모모에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스스로 해답을 찾고 돌아가요. 모모는 그냥 들어주기만 했을 뿐인데 말이에요. 이렇게 신기한 과정을 겪은 도시 사람들은 모두 모모와 친구가 되어 깊은 관계를 형성해요. 다 모모가 가진 경청 능력 덕분이에요. 그러던 어느 날, 모모가 사는 도시에 회색 신사라는 사람이 나타나 사람들의 시간을 다 훔쳐 가기 시작해요. 이 회색 신사는 시간을 훔쳐 가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죠. 당신은 지금 시간을 너무 허비하며 살고 있다. 허비된 시간이 인생의 절반 이상이다. 하지만 시간을 아주 바쁘고 밀도 있게 사용하고 나머지 남는 시간을 나에게 저축해 놓는다면 나중에 그 시간을 당신에게 되돌려주겠다. 그러면 당신은 나중에 그 시간을 풍요롭게 쓸 수 있다. 이 말에 솔깃한 도시 사람들은 모두 회색 신사에게 시간을 넘겨주고, 아주 바쁘게 살아가기 시작해요. 그래서 이제 마을 사람들은 모모를 만나 자기 이야기를 들려줄 시간이 없어졌죠. 모모는 위화감을 느껴요. 왜 갑자기 친구들이 나를 찾아오지 않을까? 그리고 왜 우리 도시가 점점 불행해지고 있지? 점점 추워지고 있지? 마지막엔 모모가 회색 신사로부터 시간을 되찾아 도시 사람들에게 다시 시간을 되돌려주는데, 그 이후부터 다시 도시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해요.

제가 이 책을 인생의 책으로 꼽아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책이 전해주는 두 가지 교훈 때문이에요. 첫째는 행복이에요. 이 책을 처음 읽은 게 1980년대인데, 지금 2020년에 읽어도 많은 울림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우리는 지금 너무 피로 사회를 살고 있잖아요. 모든 일을 다 바쁘게, 빨리, 많이 해결해야 안심하고, 내 시간을 꽉꽉 채워서 열심히 살아내야만 잘 산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삶이 정말로 행복한 삶일까요? 우리는 바쁘게 삶으로써 행복을 따라가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우리 행복은 멀어지고 있지 않나요?

그런데 더욱 인상 깊었던 점은 모모가 가진 경청 능력이에요. 중학교 때 이 책을 읽고 나서 진심 어린 경청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길이며, 사람과 진정으로 친구가 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느꼈어요.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에서는 이렇게 남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사람이 부족해요. 그리고 또 그런 사람들이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나야말로 세상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내 귀를 열어주는 사람이 돼야겠다. 중학교 3학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 쇳물 쓰지 마라우리는 미화되었다도 경청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에요. 이 두 책의 저자 제페토는 아직도 얼굴과 실명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 책이 출판된 계기가 독특해요. 어느 포털사이트에서 충격적인 신문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제페토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 이렇게 댓글에 공감의 마음을 담은 아름다운 시를 남겨요. 그런데 그 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이는 힘이 있어서, 언제부턴가 제페토의 댓글을 좋아서 찾아 읽는 팬층이 생겼어요. 그 팬들 덕에 이 책이 출판될 수 있었던 거에요. 저는 제페토 시인의 시 중에서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시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당진에서 20대 청년이 제철소에서 일하다가 용광로에 빠져 죽은 사건이 있었어요. 너무나 뜨거운 용광로니까 청년이 빠지자마자 뼈와 육신이 사그라들었겠죠. 그 사건에 대해서 제페토가 쓴 시인데 아직도 다시 보면 울컥해요. 그리고 우리는 미화되었다라는 시는 가수 설리 자살 사건 이후로 쓴 시인데, 이 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우린 인간은 짐승과 다르게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알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존재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설리에게 악플을 달고 달려들고 물어뜯는 사람들을 보니 우리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를 너무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에서 우리는 미화되었다라는 시가 나온 거예요.

이 책은 이런 식으로 시를 통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지만, 사회에서 너무 쉽게 잊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게 해줘요. 이 시들도 다 모모와 같은 경청의 마음에서 비롯됐어요. 우리와 다른 환경과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특별한 노력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도시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온 맘 다해 들어줬던 모모처럼. 잊혀가는 사회의 작은 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내 몸처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제페토 시인처럼. 진정으로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우리 사회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요?

 

책과 관련해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저는 15년 동안 교사를 하다가 교원대학교 교수로 임용이 됐어요. 그래서 그 이전에도 계속 중고등 학생들을 가르쳤었고, 지금도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죠. 그런데 가르치는 일을 항상 하면서 느끼는 게, 선생님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이 바로 경청이 아닌가 싶어요. 일반적으로 교사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가르치는 대로 자라지 않거든요. 오히려 교사에게는 가르치려는 태도보다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학생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바라는 삶의 방식을 이해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그게 바로 교사의 역할이에요. 그리고 개인적인 관계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 나와 다른 생각이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특별히 노력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교사들에겐 매우 중요해요. 교원대에는 교사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교사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성숙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태도에요. 모모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정성 들여 들어주는 사람. 제페토 시인처럼 소외된 약자들의 목소리에 항상 마음과 귀를 열고 있는 사람. 우리 한국교원대학교 학생들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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